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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아재

모브인혁 :: 출혈



※골든타임 정도의 고어. 일부러 줄여서 그냥 골든타임 무리 없이 보셨음, 그냥 보셔도 됩니다.
※뻔함







"최인혁 교수님. 교수님. 일어나세요."

빈 콘크리트 바닥에, 찬기가 올라 오지 않도록 이불을 깔아둔 위에, 한 남자가 빈 파이프에 손이 묶인채 벽에 기대 있었다. 그가 입은 하얀 가운, 그리고 그 안의 수술복이 그의 신분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가운에 달린 명찰.

"오늘은 기대하셔도 될 것 같아요. 저번엔 너무 빨라서 재미 없으셨죠?"

살며시 떠진 눈을 보며 말했다. 수염이 너무 났네. 저녁에 면도 해드려야 겠다.

최인혁은 더이상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꿈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쥐고 펴는 손은 아렸다. 파이프를 부수겠다는 목표도 희미해져갔다. 손가락을 포기하고 벗어날 생각도 했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약물로 인한 수면 상태를 이길 수는 없었으니, 그가 혼자 있는 시간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보면, 어떤 남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입에 헝겊이 물린채 바닥에서 튀어나온 고리에 사지가 묶인 남자는 공포감에 최인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떠진 눈이 자신이 잡은 남자를 향하는 것을 보고는 미소지었다. 어쩜, 저런 것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제 최인혁은 더이상 공포나 분노, 혐 오등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가볍게 그의 뺨에 키스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둥거리는 남자의 손에 모니터를 연결했지만, 다른 손가락으로 빼내기를 십수번 반복했다. 남자의 눈을 보다 일어나서 옆에 남자를 데려올때 쓴 파이프를 들었다.

"어차피 쇠파이프도 아닌데. 괜찮지?"

이내 잠잠해지는 남자에, 한숨을 쉬었다. 몇번을 반복해도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에 신물이 났다. 그러나, 최인혁은 달랐다. 그 다름이 사랑스러웠다. 남자의 손에 모니터를 연결하고, 동시에 팔뚝에 혈관을 찾아 수액을 놓았다. 모니터를 최인혁이 볼 수 있게 조절하곤, 수액과 함께 남자가 볼 수 없는 테이블에서 메스를 들었다.

"그래도 둔기는 너무 느리잖아. 그렇죠, 교수님?"

시각적 효과도 있고. 나는 남자의 동맥이 어디쯤 있을지 가늠해보았다. 바닥에 만들어 놓은 배수구의 위치도 확인하고, 미다졸람을 수액줄에 주사했다. 남자의 눈이 감기고, 나는 남자의 입에서 헝겊을 빼내었다.

"얼마나 주사했어?"

최인혁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반색해서 달려가니, 또다시 표정이 없다.

"많이 안 넣었어요. 여기선 잘 안보이나보죠? 저 알잖아요. 잠들어서 죽는 거 안좋아하는 거."

그제야 최인혁은 나를 본다.

"니가 싫어하는 죽음도 있나?"

당신이요. 하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말해서 전해지는 게 아니니까. 아니, 그것보다 최인혁을 죽인 것도 나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상력이 뛰어 오른다. 메스를 든 손으로 다시 남자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최교수님 대신이 되어줘야겠다.

"재미없는 죽음은 있죠. 그런 의미에서 외상외과는 참 좋아요. 교수님도 좋고."

메스는 가볍게 남자의 배를 가른다. 복벽도 가르고, 내장도 가른다. 점점 피가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다시 수액 줄로 다가가 미다졸람을 더 투여했다. 수액량을 늘리고, 최인혁을 보니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힐끗 보니, 피가, 차오르는 게 보였다.

최인혁의 옆에 앉아, 고개를 기울였다.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내가 관심있는 것은 최인혁이라는 이 남자, 그리고 이 남자의 반응. 옆에서 보는 최인혁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석양이 그를 비추면, 마치 눈이 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최인혁은 남자를 계속해서 봤다. 두 계단 아래의 남자의 배에서 계속해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일부러 벌려놓은 배에, 어디서 출혈이 나고 있는 지 확인하는 것은 쉬웠다. 깔끔한 메스자국. 혈압은 70. 모니터는 계속 삑삑거리는 데, 떨어지는 것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시 손목을 잘그락거려봐야, 파이프는 덜컹이는 소리만 냈다. 저 자리에 서있었으면, 저걸 잡는 건 문제도 아닌데. 다시 어깨를 비틀었다.

오늘따라 반응이 거셌다. 역시, 자기 분야라 다르네. 저번에 야구방망이로 복부를 잔뜩 때린 후, 배를 갈랐을 때도 재밌긴 했지만 기다리는 과정이 너무 지루했다. 피 때문에 안에도 안보였고. 벽에 달아놓은 씨씨티비는 오로지 최인혁을 비추고 있었다. 저번 테이프 편집했던가.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아, 계속해서 움찔거리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의 꽉진 손이 하얘져 있었다.









미다졸람은 극중에서도 나오....던가. 프로포폴이랑 같이 논란이 되었던 약물. 진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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