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아재

그래상식 :: 바둑

annina 2015. 2. 8. 01:48
6살 장그래와 23살 오상식






여름에 매일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오는 길에는, 철제 미닫이 문이 활짝 열려 안이 보이는 바둑원이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다 보면, 상당히 늦은 시간인데도 늘 한 아이가 혼자 바둑을 두고 있었다. 호기심에 몇번을 그 곳을 훔쳐보느라 시간을 허비했는지 모를 정도 였다.

그 애의 시선은 언제나 바둑판을 떠날 줄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날. 그래 그 날. 나는 그 날도 어김없이 그 애를 보고 있었고, 그 애는 바둑판을 보고 있어야할 시선을 내게 옮겼다. 우리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다, 민망해진 내가 그 바둑원을 지나치는 걸로 끝이났다.

다음날, 그 거리에 들어서서 바둑원이 눈에 보이자, 나는 그냥 지나쳐야 겠다고 결심했지만, 빠른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치면서도 그 안으로 홀린듯 빨려 들어가는 시선을 제어할 수는 없었다. 그 아이는 평소와 달리, 문 앞에 서 있었다. 걸음을 늦추지 않고 그곳을 지나치며, 무슨 일 일까하고 물음이 생기자 마자, 내 긴 바짓단을 잡아오는 손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옆으로 넘어졌고, 아이 또한 내 위로 쓰러졌다.

나는 혹여 아이가 다치지 않았을까하고 아이의 몸을 살펴 보다, 이 아이 때문에 넘어졌다 싶어 아이의 무릎에서 시선을 올리자, 어김없이 바둑원의 그 아이였다. 나는 아이가 일어서게 끔 하곤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췄다. 그러자, 아이는 그 작은 입을 열어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 맨날 지나가면서 우리 바둑원 훔쳐봤죠?"

나는 널 훔쳐본거야. 하고 진실을 이야기 할수는 없었지만, 당당히 말하는 아이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갑자기 내 손가락을 붙잡더니 이쪽으로 가자는 듯이 나를 이끌었다. 얼결에 일어난 나는 아이가 가는 곳이 바둑원 안 임을 알았다.

"나 여기 들어가도 돼?"
"동네 할아버지들도 많이 와요."

아이는 늘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에 나를 앉히고는, 그 반대편에 앉았다. 나는 아이때문에 이끌려 왔음에도 이리저리 신기한게 많아 두리번 거리다가 아이가 바둑돌을 담은 나무통을 내려놓는 소리에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작은 손으로 익숙하다는 듯 내게 흰 돌을 내밀었다.

"나랑 바둑 둬요!"
"나 바둑 못 두는데."

아이는 알았다는 듯이 자신 쪽으로 흰 돌을 가져가고, 내게 검은 돌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도 무슨 뜻인지 몰라서 한참 멍히 있다, 아이가 바둑알이 든 통의 뚜껑을 열자 나도 대충 아이를 따라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또 아이를 바라보자, 아이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둬요, 왜 안 둬요?"
"내가 먼저야?"
"당연하죠! 원래 검은돌이 먼저에요. 아저씨, 진짜 하나도 몰라요?"
"음..."

나는 대충 그렇구나 하며 검은돌을 정 가운데에, 놓아 달라는 듯이 까만 점이 있는 곳에 놓았다. 아이는 또 뭐라 하며 내게 말을 했고, 나는 아이에게 물어 물어가며 바둑을 배웠다.

"그러니까, 귀퉁이가 중요하다 이거지?"
"중앙보다 귀가 중요하구요, 그 다음 변이에요. 중앙은 젤 마지막."

나는 아이가 두는 모양을 보며, 그 옆으로 바둑알을 놓았다. 아이는 어쩔땐 엄숙한 할아버지 같다가도, 어느새 활달한 아이같이 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 눈길에, 나는 타버리지 않게끔, 서둘러 바둑판으로 고개를 숙였다. 탁, 탁 하고 바둑알이 바둑판과 맞닿아 울리는 소리가 바둑원을 울렸다.

"이건 미생이란 거에요. 아직 집을 이루거나 하진 않았지만, 완생을 이룰 가능성이 있는 수죠. 상대방한테 공격당해서 사석이 될수도 있지만, 아저씨가 잘한다면,"

나는 아이가 가리킨 자리에 내 흑돌을 놓았다. 아이는 잘했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면서 계속해서 내게 말했다.

"이렇게 완생이 되는 거에요. 완생이 된 집은, 상대가 더 이상 공격할 수도, 무너지지도 않아요."



나는 그 날, 그 아이를 본 이후로 바둑에 한 동안 심취해 있었다. 그건, 그 날이후로 내가 그 아이를 보지 못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농성을 하는 사이, 나는 학교 구석에 쭈그려 앉아 내가 직접 그린 기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에, 아이가 두던 수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혹여, 아이가 잊혀질라 나는 계속해서 그 기보를 바라보고 있다 잠이 들었다.











바둑 내용은 위키보면서 한 거라 틀린 게 있을 수도 있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