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미생

해준백기 :: 짝사랑의 결과

annina 2015. 2. 21. 03:43








나는 우리가 친해졌다는 걸 알았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게 사적으로 말을 거는 일이 많아지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같이 일을 하나씩 끝낼때마다 그는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어느날은 부서에서 같이 회식을 가기도 하고, 들떴는지 과음한 자신을 그가 부축해 준적도 있었다. 어깨를 감싸 택시 안으로 자신을 부축해주고, 팔의 빼는 그에 저도 모르게 따라 나가려다 닫히는 문에 좌절한 적 또한 있었다.

부서에 있을 땐, 마치 누구보다 그와 가까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옆자리에서, 전화를 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준 일거리를 하고, 그와 합을 맞춰가는. 혹여, 그가 자리를 뜰 때면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외근을 갈때는 인사를 했고, 잠깐 쉬실 때는 더 멀리까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때가 적기는 했지만, 주로 같은 대리님들과 어울리시곤 하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가까워보여서, 나는 그것에 조금 질투가 나기도 했다.

질투라니.

나는 어느 날, 화장실에 갔다가 내가 그를 좋아한단 걸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하루종일 그의 생각 뿐이었는데, 이제와서? 화장실 벽에 머리를 박고 싶은 걸 겨우 참아냈다. 그때, 외근을 나간 그에게서 전화가 와 나는 별수 없이 화장실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실로 얼마만인지, 나는 저도 모르개 그를 멍히 쳐다보는 때가 잦아 졌고 실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저를 쳐다볼때마다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그가, 실수로 혹은 고의로 자신과 닿을 때마다 본능적으로 화들짝 놀라곤 했는데, 그러면 그는 어디 아픕니까? 하며 자신을 걱정해 주곤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럼 얼굴이 붉어진 채 개미만한 목소리로 아뇨, 괜찮습니다. 라고 말한다.


집 앞에 자주 가는 카페가 하나 있는데, 크지는 않아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커피도 맛있는 좋은 곳이었다. 헬스를 하고 나서는 자신에 대한 보상처럼 그 곳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사가곤 하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카운터 앞에서,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 주문을 하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계산을 하고 돌아보니, 강대리님이 창가자리에 앉아 있었다. 주말인데도 수트를 입으신 강대리님이.

순간 반가운 기분이 들어, 가서 인사를 할까 했는데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이 여자인 걸 알고는 발이 묶였다. 뒷모습만 보이지만, 예쁜 사람 같이 보였다. 그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간간히 목소리는 들리지만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너무 방심하고 쳐다본 탓일까,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걸 막을 수도 없었고, 그저 그의 시선을 피하고 싶어서 가게를 나가려 하자, 사장님이 커피는? 하고 묻기에 나중에요! 하고, 나가버렸다.

나중에라니... 으... 카페에서 얼마나 벗어났다고, 사람들이 좀 뜸한 골목에서 쭈그려 앉아 머리를 숙였다. 선이라도 보시는 걸까. 그야 강대리님, 능력 있으시고, 잘생기시고, 성격도 좋으시고...

콘크리트 바닥에, 한두방울 씩 떨어지는 눈물에 안경도 젖는걸 보곤 안경을 벗어 손에 들었다. 그 여성분이랑 사귀실까, 결혼도 하시겠지. 애도 낳으실꺼고, 전부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 될것이다. 난 그의 결혼식에도 가게 될테지. 자꾸만 떨어지는 눈물에, 손으로 훔치려고 했지만, 이미 손도 다 젖어 제대로 훔쳐지지가 않았다.


쭈그려 앉아 있다 일어나자, 다리가 저려 휘청했다. 거의 넘어질 뻔했는 데, 팔이 잡혀 똑바로 섰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쥐고 있던 안경을 떨어뜨렸다. 그가 허리를 굽혀 그 안경을 들어 올렸다.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깨진 안경은, 제 구실을 못하게 되어 보였지만, 그런 것은 별 상관이 없었다. 왜, 제 앞에.

"...언제부터 있으셨어요?"
"장백기씨가 카페 나갈 때, 따라나왔습니다."

나는 또 얼굴에 열이 올라 그의 시선을 피했지만, 그에게 붙잡힌 팔에 도망갈 수 없었다.

"안경이 깨졌군요. 하나 사드리겠습니다."
"예? 왜, 왜요?"
"저 때문에 울고 계셨던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제가 책임지죠. 하며, 강대리님은 젖은 내 얼굴을 훔쳤다.










데인님 리퀘로 받은 짝사랑하는 장백기와 선보는 강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