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아재
민우인혁 :: 흔한 애인 사이
annina
2015. 3. 18. 11:42
당신을 위해서, 서울로 향하는 길이었다. 레지던트 4년. 그 기간동안, 나는 당신을 두고 떠나게 될 터였다.
당신은 왜 나를 당신의 품에 품어주지 않았을까. 재인쌤이 당신의 밑에 레지 TO를 넣어주겠다고, 그렇게 말했다던데. 왜, 당신은 그 TO를 받지 않았을까. 내가 곁에 있는 것이, 그렇게나 무서웠을까. 당신의 실패를 바라보고, 그것에 내가 실망하는 것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내가 더 이상 당신을 우러러보지 않음을 상상했을까. 나는 당신이 나를 붙잡기를 바랬다.
당신은 너무나 배려심이 깊었다. 그 배려가 당신을 감싸고 있었다. 은아쌤도, 나도, 당신이 붙잡으면 언제나 당신에게 돌아갈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는 배려일 것이다.
당신은 너무나 빛났다. 당신을 보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당신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 무섭기까지 했다. 그래서 당신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당신을, 좀 더 바라보고, 배우고, 도와주고 싶었다. 그 옆에서 계속 당신에게 설레이고 싶었다.
최인혁 교수님. 하고 부르면 올려다 보는 그 눈이 너무 좋았다. 당신의 눈은 참 신기했었다. 수술할 때의 당신은, 절대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피가 튀든, 어레스트가 일어나든, 당신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손을 잡거나, 그 위에 입을 맞추면, 당신은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하거나, 살짝 웃었다. 그러면 나는 또, 당신의 입술에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그것을 입 밖으로 내고 말해버렸다. 그럼, 당신은 난감한 듯, 입술을 올리며 사람이 없으면, 내게 살짝 키스했다. 나는 그런 당신이 무섭다. 나는 평생 당신을 보며 살아갈 것이다.
내 태양은 당신이다. 내 세상의 모든 것은 당신을 향해있고, 위한 것이고, 그리고 당신의 빛에 의해 유지된다. 내 생존은 당신에 달려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점점 밝아 지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자신이 필요한 곳에서만 목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가 묻힐 것 같거나, 당신의 대체품이 있는 곳에서는 나서지 않았다. 당신은 상대가 당신을 지목하면, 늘 놀란 토끼눈을 하고 상대를 바라봤었다. 나는, 당신이 스스로를 좀 더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게된다면,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받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품에, 내가 있기를.
내가 없는 그 몇 년동안 수 많은 인턴들이 당신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럼, 또 당신은 막을 수 없는 빛을 낼 것이다. 그 빛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그 인턴들이 당신에게 홀려, 나처럼 외과를 지원하게 되리란 것을 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절대 당신의 밑에 레지던트를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당신의 팰로우로 들어 갈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오직 내가 당신의 수제자다.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을, 또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 당신을 이토록 사랑할 이도.
휴가를 내면, 무조건 당신을 찾아갔다. 당신에게 가서, 온갖 케이스들을 말해주고, 조언을 받았다. 당신의 입장에서는 어찌했을지. 그리고, 나는 당신의 손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럼, 당신은 내가 오기 전, 일주일 내내 병원에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나를 위해 안절부절하며 당신의 집에 갔었다. 나를 데리고. 그 집에서 호출이 오면, 나는 당신의 옷을 준비했다. 당신은 허겁지겁 나서다가, 당신을 무리하게 한 나를 나무라고, 나는 그런 당신에게 웃어줬다. 당신을 태워다 주며, 나는 당신이 병원의 인턴과 전화하는 것을 엿들었다. 예전 내 자리에 조금, 질투가 난다.
당신이 수술 하는 것을 수술실 밖에서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었음에도, 마치 처음과도 같은 설레임. 그러나 당신의 맞은 편에 서있는 인턴의 표정이 나와 같음을 알아챘다. 옆에 있는 다른 쌤에게 누구냐고 묻자, 당신의 다큐를 보고 인턴이 되려고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수술이 끝나자마자, 나는 당신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당신은 그 인턴에게 환자의 처리를 맡기고 나를 따라나섰다.
교수님. 하고 부르면, 이전과 같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에 또 기분이 좋아져, 아까 수술한 환자에 대해 물었다. 당신은 열렬히 대답해주고, 나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점점 당신의 대화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에 처음으로 레지던트가 된 보람을 느꼈다.
휴가 마지막 날. 당신과 함께 이 날을 보냈다. 사랑한다고 계속 속삭이면, 경상도 남자인 당신은 별 말을 안하다가, 고개를 들어 그래. 하고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당신이 아무말 해주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믿고 있다. 나는 또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익, 당신은 내게 안겨왔다.
서울로 다시 가는 날, 이전 인턴때 친분을 쌓은 이들이 나를 배웅했다. 나는 민망해하며 자리를 뜨지만, 당신은 그 배웅행렬에 없었다. 은아쌤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차를 타자, 당신이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나는 웃으며, 병원 뒷 골목에 차를 세우고 당신에게 키스했다. 당신은 내 옷깃을 잡아오고, 나는 당신의 목덜미로 내려갔다. 그 목덜미에 이를 세워 박았다. 당신은 아파하며, 내 뒷머리를 살짝 쥐고, 나는 그곳에 내 자국을 만들었다.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게, 등을 굽히면 보이는 곳에. 그 위를 핥았다.
나는 그 뒷골목에 그를 내려다 주며, 당신에게 인사했다.
최인혁 교수님. 사랑합니다.
...나도 그래요.
나는 당신이 가운을 펄럭이며 병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벙찐채 바라봤다.
원래 다른 어투로 쓴 걸 "했다"로 다 고쳐서 조금 어색합니다.
뭐가 좋은지 몰라서 둘다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