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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경영우 :: SavePoint
annina
2015. 4. 8. 12:58
약속시간이 지난지 30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 원래 같으면 데리러 갔었어야 했지만, 영우가 이 근처에 약속이 있다는 이유를 댔기에 휘경은 자신의 집에서 얌전히 그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영우의 몇번의 퇴짜 끝에 겨우 얻어낸 데이트 기회였으니, 그의 연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휘경은 철저한 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의 집에 온다고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던 휘경은 대문이 있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대문을 노려보았다. 담 밖으로 차 소리가 들리면 두근거리며 바라보기도 하고. 영우의 로펌 가까이 새로 구한 집은, 막 인테리어를 끝내 깔끔했으며, 마당 또한 깨끗하고 이르게 흐드러지게 핀 꽃들로 가득 차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사이에, 휘경이 자신의 눈 앞에서 알짱거리는 참새 한쌍을 노려봤다.
낮에 한 약속이었으나, 시간은 점점 저녁을 향해 갔다. 한참을 휘경의 앞에서 서성이던 참새들이 담 밖의 차소리에 놀라, 푸드덕거리며 날라갔다. 앉아 있던 휘경은 참새들이 날아간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안에서 기다려야 하나 싶어 휘경이 일어서자, 벨이 울렸다.
차에서 내리는 영우가 너무 지쳐 보여서, 휘경은 그에게 왜 늦었냐고 투정부리려던 계획을 싹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휘경이 그의 한쪽 팔을 붙잡자, 영우는 그 쪽으로 살짝 기대었다. 영우의 운전기사가 휘경의 반대에 붙어 그를 부축하자, 휘경이 운전기사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제가 할께요."
그를 데리고 현관까지 가는 길이 먼 것이 미안하게만 느껴졌다. 현관을 지나, 쇼파에 그를 앉혔다.
"오래 기다렸겠군요."
"많이 안 기디렸어요."
"절 안 기다렸나요?"
"그, 아니, 시간이 많이 지난 건 아니라는..."
새벽부터 지금까지 혹사 당한 영우가 휘경의 집에 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다는 것을, 휘경은 알고 있을지. 영우는 휘경을 옆에 앉혔다. 그리고 그를 껴안으며, 아까 샤워 겸 뒤처리를 하고 자신의 머리가 다 말랐나 스스로 매만지던 것이 떠올라 소리내어 웃었다. 자신의 웃음에, 휘경이 어색하게 있던 손을 영우의 허리에 감쌌다. 그를 놀리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품에서는 그의 향수 냄새가 났다. 아침의 남자들과는 다른, 좋은 향기였다. 그래서 영우는 휘경을 놀렸다. 이래도 안 떠나? 이거는? 하는 마음 반, 그의 솔직한 반응을 보려는,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어린애 같은 마음 반.
영우의 더러운 기분이, 대문에서 마주했을 때 안절부절하던 휘경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 그래서 영우는 고맙다고, 입 안으로 휘경에게 말했다.
휘경은 먼저 자신을 안아 오는 작은 저의 연인이 웃는 것을 듣고는 허리에 그의 손을 둘렀다. 크게만 보였던 연인은 자신의 품에서는 너무나 작았고, 몸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휘경은 흉터가 있는 그의 목에 입술을 눌렀다. 먹고 싶다. 아.
마주 안은 자세는 휘경에게 좋은 기회였으나, 휘경은 단순히 영우가 자신에게 더 쉽게 기댈 수 있게끔만 했다. 그리고 영우의 귀에다 대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얼마나 인내심이 있는 지 알면 놀라실 꺼라고. 그렇게 말하는 휘경은 전부 진심이었다. 영우와 사귀며, 휘경은 자신보다 배로는 바쁜 그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휘경은 영우를 사랑했다. 이, 작은 사람을.
목에 닿았다 떨어지는 휘경의 입술을 느끼고 그의 품에 더욱 파고 들었던가.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익숙해지지 않을 느낌에 아직도 소름이 돋았다. 휘경의 팔이 자신을 감싸고 있지 않았으면 이내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걸, 용납하지는 않았지만. 새삼, 자신의 애인, 애인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이 어린아이의 품이 상당히 넓다는 것을 느꼈다.
"저희 데이트 하는 거 맞죠?"
"...지금 데이트하고 있잖아요."
"차대표님, 서로 껴안고 있는 걸 데이트라고 하지는 않을껄요."
"그럼, 휘경씨는 싫으세요?"
대답이 없는 휘경은 단지 영우를 더욱 껴안았다. 사실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기 그지 없었으나.
"그낭, 대표님 얼굴이 보고싶어서요."
"알겠습니다."
휘경의 품에서 벗어나며, 영우는 안경을 벗었다. 약간 흐릿하게 보이는 휘경에, 영우가 휘경의 뺨을 잡아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동공이 크게 보이는, 생각을 숨길 수 없을 위치였다. 영우의 눈이 굴러가며, 휘경의 얼굴을 살폈다. 휘경은 그런 영우의 시선을 피하려다, 다시 그의 눈을 마주했다.
"사랑해요."
휘경은 그리고 영우의 입술에 닿았다. 마주했고, 닿았다. 먼저 다가간 것이 누구였던 간에, 서로가 지금 닿은 것은 확실했다. 휘경은 영우가 무엇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물을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위치였으나, 단지 영우에게 위로를 전해줄 수 있다는 것에 자기위안했다. 자신이 영우에게 어떠한 위치이건, 영우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순간, 지금만큼은 그의 연인이었다.
하노님 리퀘, 휘경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