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뮨

치원마박/치원도현 :: 가난한 눈짓

annina 2016. 5. 14. 23:38




네 가난한 눈짓에 그저 무너져 내리는 내가 있었다. 그 무겁던 감정들을 놓아버린 빈 껍데기에 붙어오는 네가 있었고, 다시 그에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드는 네가 있었다. 애초에 네가 바란 게 뭐길래? 젖은 얼굴을 쓰다듬으면 그가 마치 목숨줄이라도 되는 듯 붙어오는 너는 내게서 무언갈 끌어 내려는 듯, 혹은 내가 빈털터리란 걸 더 상기하게 하는 듯 했다. 누가 널 데려왔더라. 젖은 강아지나 고양이 같던 널... 배우는 배우를 알아보고, 우리는 서로를 알아봤다. 화려한 껍데기와 속 알맹이들. 나뒹구는 동안 새로 자리 잡은 줄 자국에 약을 발라주었더니 금세 졸졸 쫓아 오는 눈빛이 싫었던 기억은 있었다. 정신연령이 어리기만 한 이 바닥에서 그건 그리 희귀한 경험은 아니었고, 네 마스크가 유달리 특출났기에 동요했었나 싶었긴 했다.

내가 누군가와 붙어 들어가면, 그 등 뒤를 붙잡아오는 눈빛의 주인은 언제나 너였다. 그 옆에서 시시덕대며 네 뒷통수를 때리려드는 밝은 이에겐 눈길 한줌 주지 못하는 네 시선은 나와 같이 공허했던가, 아님 이전의 나와 같이 빛났던가. 한 번도 돌아본 적이 없어, 너의 눈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이 가난하고 빛 잃은, 상한 눈이었을까. 그 상함이 모여들어 지금의 널 만들었을까. 이제는 이미 붙어오는 몸짓도 없이 식은 것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포획된 몸이 네가 있는 식어가는 욕조 물에 코를 박게끔 했다. 비린내에 인상를 쓰다가도, 그것이 네 것이라 여기니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빠져나간 숨 대신에 스미는 듯한 물을 삼켰고, 다시 삼켰다. 네가 폐까지 도달치 못한 것에 다시 한숨 쉬며 조금이라도 빨리 너와 같이 있으려 했다.

내 가난이 네게 옮겨간 이유는, 네가 나와 같아 지려 했기 때문이었고 지금 내가 너와 같아지려 하는 이유는 네 가난은 내가 지녔던 것들보다 하찮기 때문이었다. 지하에 있던 날 위해, 너는 땅 밑에 코를 박았고 나 또한 너와 같은 층에 가기 위해서 내 발 밑으로 스며들었다. 네가 바라던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애초에 너도 내가 바란 것을 알지 못해 이리 행동한 것일테니, 나 또한 네 바램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너는...

흐린 눈 앞에 서있는 널 보았다. 폐가 물로 가득한 듯 출렁거렸다. 그제야, 아 네가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네 눈 앞으로 다가갔단 걸 알았다. 두 귀에 출렁이는 물 소리가 마치 바다와 같았다. 언제 너는 나와 같이 바다에가 일출을 보고싶다고 말했었지. 비록 해는 없더라도, 하나, 네 바램 하나는 이루었구나 싶어 처음으로 네 앞에서 웃어보였다. 경련하는 입꼬리조차 실체가 아니었건만 그럼에도 즐거웠다. 행복해졌다. 그러나 단 한 번 꿈꿨던 행복은, 그 때와 같이 순식간에 하강했다. 네 손을 찾아 더듬자, 이내 잡아오는 손은 분명 너였는데 그런데도 나와 달리 따뜻하기만 했다. 가난한 너와, 가난한 나는 그러한 사치를 부릴 가치를 지니지 못했기에 나는 네 손을 놓았다. 그러면 이제는 차가운 손이 다시 내 손을 잡아왔다. 아, 그래. 깍지를 끼며 같이 내려갔더랬다. 네가 좋아하는 어느 촌스런 노래가 귓가에 울렸고, 이내 그는 네 목소리가 되어 다가왔다.

가난하기에 우리는 사랑을 누리기에 부적절했다. 지팡이를 짚기에도 모자랐고, 등이 굽기에도 모자랐다. 이 이상 누리는 삶조차 벅차했던 너와 나였는데. 곱슬끼 있는 머리를 쓰다듬으면 거기에 엉켜오는 네가 따스했다. 나는 소모하여 가난했고, 너는 버렸기에 가난했다. 네가 버린 것들을 다시 주워 담았다간, 너와 같아지지 않을까 나는 겁이 났다. 그래서 네가 나를 넘어, 그 아래로, 혹은 가느다래지는 걸 그저 보기만 했다. 어쩌면 그러한 너를 보며 자위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고, 어쩌면 네가 나보다 더 가난하여 내가 네게 무언갈 줄 수도 있을꺼라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처음 겪는 오만이 아니었고, 그래서 괜찮을 꺼라 느꼈다. 만약 네가 충분히 가난해진다면 나를 떠날꺼라, 은연 중에 그리 생각했다. 나눠줄 것 없는 이에게 매달리지 않을꺼라. 이전에 나는 그 생각으로 다릴 잃었고 행복을 잃었다.

그래, 처음엔 네가 나보다 가난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싶기도 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내가 처음 체중을 얻었듯이 너 또한 그런 게 아닌가. 그렇다면 너는 왜 그것을 퍼내는 식의 사랑을 했을까.

너와 내가 가진, 낮은 자존감과 연결된 나르시시즘은 이 바닥 사람들에게 자주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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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마이 잔다. 응? 굳은살이 사라져 이제는 맨질한 손을 붙잡으며 당신의 심박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규칙적이지만 큰 진폭을 나타내지 못하는 그래프는 마치 제 심정같기도 했다. 길게 난 수염이 당신의 여린 손바닥을 찌를까 기대지도 못한 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당신의 무너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닿지 않을꺼라 여기던 내 손은 이제 얼룩덜룩한 채 당신에게 닿고 있었는데, 마주 잡지 않으려 드는 당신은 또 다시 내게는 너무나 멀리에 있었다. 그저, 나를 보기 만을 바랬던 당신의 눈은 감긴 채. 떨군 고개마저, 당신은 나를 보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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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