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스타트렉

커크본즈 :: 복제

annina 2016. 9. 10. 22:38
※ 맥커크 짐본즈
※ 사망요소 있음
※ 비욘드 초반 장면





바다가 있었다. 얼마나 깊은지 아래가 보이지 않는 바다가. 평소엔 하늘 같았던 네 눈은 그 바다를 보고 난 뒤부터 바다가 되었다. 높디 높던 눈은 깊다 못해 더는 바라볼 수 없을 지경이었고, 꿈결에라도 마주하면 숨이 막혀 죽어버릴 듯 했다. 지나가다 그 시선과 스치기라도 하면, 피라도 굳은 듯 몸은 얼고 손은 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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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일이잖아. 잔을 부딪치며 웃어도 이내 마주 한 두려움에 고갤 떨궜다. 승선한 후로 피딱지가 가시질 않던 입술을 다시 물고는 소독이라도 하듯 독한 술을 마셨다. 쓰다 써. 차가운 입술을 핥으며 잔을 기울여 얼음을 달그락 대자, 은근히 웃는 소리가 맞은 편에서 들렸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젠장, 제기랄. 무뎌진 줄 알았음에도, 버릇처럼 속으로 욕을 해대며 시선을 피했다.

애들한테 오늘 너 생일인 거 말 안했다.

그렇게 좋은 날도 아닌데 잘했어.

...좋은 날 아니기는. 어머니한테 연락은 드렸고?

응, 지구시에 맞춰서 드렸어.

뭐라시던데?

그냥 뭐... 생일 축하한다, 성묘는 형이랑 같이 갈꺼니까 신경쓰지 말아라. 하시던데.

...그래. 수고했다, 짐보.

푸슬한 머릴 쓰다듬자, 녀석은 그 틈에 다시 시선을 붙여왔다. 속으로 쪼그라드는 심장 부여잡고, 덤덤히 넘기려 하니 마주한 눈이 끝까지 떨어지질 않았다. 적당히 해라. 참지 못하고 녀석의 정수릴 장난스레 눌러대며 고갤 돌렸다. 잠시 마주한 벽색이 아닌, 남색으로 물든 눈에 내 시야가 다 흐려졌다. 점점 더 진해지잖아. 꼬깔모 씌운 것도 아닌데, 녀석은 과장되게 웃어댔다. 내가 아는 짐이다. 생일만 되면 상처받지 않으려 껍질을 뒤집어 쓰는 제임스 T. 커크다. 스스로 그리 말하며 허릴 폈다. 팔에 닿아오는 온기도 분명 녀석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녀석은 내 손으로 보낸 그 녀석이 아니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은 끝까지 나를 붙들었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영이 우스웠다. 머리 속에선 수도 없이 저 노란 머릴 부수고 같지 않은 눈알을 뽑아냈는데. 실제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왜 그 녀석을 따라하고 그 녀석 자리에 앉아있지?

뾰족귀 놈에게 넌지시 물어봤으나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오지 않던 걸 보아, 그 놈은 눈치도 못채고 있으리라. 저려오는 팔을 풀곤 다시 술을 삼켰다. 얇게 아물었다 터진 입술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임무 하나하나가 다 불안했지만 차마 브릿지에는 올라가지도 못했다. 되도 않는 핑계 대어가며 눈을, 자릴 피했다. 의무 검진일이 다가와도 이리 저리 핑계를 대다가, 겨우 기본적인 검사만 해버리고 녀석에게서 쫓기듯 도망쳐 나왔다.

유전자 검사를 비롯해 여러 검사에 쓰려고 채취해 놓은 샘플들 위엔 먼지만 가득 했다. 키트에 넣고 몇분도 되지 않아 나올 결과가 두려워 그랬다. 만약, 아주 만약에 같다면. ...같다면?

내가 본 그 시체와 피. 딱딱하게 굳었던 피부와 푸석한 머리카락. 움직이지 않는 동공이 거짓이에 불과했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본 게 그럼 꿈이고 망상에 지나지 않다고. 웃기지마. 조잘대며 고갤 주억이는 녀석의 모습에는 분명 커크가 있었다. 짐. 하고 부르면 의문에 가득한 눈이 날 향할텐데.

 그러나 내가 본 건 분명히 시체였고, 그러니 눈 앞의 이것도 분명 진짜가 아닌데. 다가오는 온기와 입꼬리에 묻어나오는 감정들은 짐 커크였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캡틴 제임스 커크. 함선에 탄 기간 동안 녀석의 깊어진 이마 주름들을 바라봤다. 배에 탄지... 얼마나 지났지. 창 밖으로 어느 잔해들이 엔터프라이즈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3년? 첫 일년은 놀라 피하기만 했고, 그 다음 년은 눈만 피하면 어떻게 몸은 움직였다. 그리고 올해는, 이리 마주 한 채 이야기를 나눌 정도는 되었다. 그 기간동안 이 녀석은 너무 빠르게 늙어갔다. 수 많은 레드셔츠 애들이 죽어나갔고, 녀석의 몸에도 셀 수 없는 흉터들이 남겨졌다. 쉽사리 아물지 않는 상처에 녀석은 힘들어 했으나, 더 깊어지는 주름들로 그를 이겨냈다.

그 과정 속에, 시체를 본 기억은 희미해졌다. 바로 눈 앞에 난장판이 있는데 이제는 얼마나 지났을지 모를, 환각인지, 꿈인지, 망상인지 모를 오래된 시체는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당연하지. 그리고 뭉게지고 닳은 신경줄은 아무래도 좋단 입장을 취했다. 누런 술이 조명 등을 업고 번쩍거리자 눈 앞의 짐 커크인지 뭔지 모를 놈은 또 혼자 신나 이야기를 털어놨다. 머리 속에선 아무래도 좋단 생각과, 짐에 대한 집착이 서로 싸우다가 오늘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술병만 비웠다.

되는대로 로커에서 가져온 버본이 바닥을 들어낼 정도로 마셔댄 녀석은 그 불안하게도 가느다란 의자 위에서 잠들었다. 색색 거리며 불편한 숨을 내쉬는 녀석의 모래알 머릴 만지려다가 저도 취했단 걸 알고 손을 거뒀다. 누군지 말해봐. 어디서 왔고, 이름은 뭔지. 아무리 누군가의 복제라고는 해도, 너도 가족이나 친구는 있을 거 아니야. 차가운 테이블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엎어진 채, 취기에 어려 내 말만 중얼댔다. 도대체 왜 죽고 나서도 말썽이냐. 사람 이렇게 엿먹이는 거 아니다, 이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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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가 친구가 어디있어. 가족은 또 어디있고. 너도 알잖아, 본즈. 내 가족은 내 가족이 아니고, 내 친구는 내 친구가... 아닌 걸. 그래도, 너처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망가지면 네가 모든 걸 말해줄테니까. 내가 실수하면 너는 단숨에 나를 끌어내리겠지? 그리고 내가 가짜란 걸 말해줄 거야. 나같은 실패작은 네 손에 죽어야만 해. 진짜를 사랑했던 사람한테. 그래.

커크의 손에 짧은 머리가 손에 걸렸다. 그래도 널 사랑해. 이건 내꺼야. 이건 베껴낸 게 아니라, 내꺼야. 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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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희생'
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