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스타트렉

캐롤본즈 :: 유령

annina 2016. 11. 7. 17:37
※ 시스헤테로 남성 캐롤->칼, 시스헤테로 여성 본즈.

※ 마커스 제독은 캐롤을 제외한 엔터프라이즈 크루 전부를 죽이고  캐롤은 짝사랑하던 본즈의 시체 앞에서 자살함.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제 뒷배를 봐주고 계셨어요. 하지말라고 그렇게 말해도 절 꼭 안전한 루트만 도는 함선에 배치시키려고 하셨죠. 물론 전 질색하며 싫어했고요. 왜 아시잖습니까, 밖에선 양심의 가책 없이 사람을 죽여도 안에선 아이와 애완동물을 사랑스러워하는.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죠.

네가 옐로 셔츠가 아니라 블루 셔츠를 입은 것도 같은 맥락인 건가? 아무래도 그 쪽이 생존률이 더 높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자네는 왜 엔터프라이즈에 올랐지? 자네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닥터, 방금 발언으로 닥터가 마커스 대위가 이전에 했던 설명을 듣지 않으셨단 게 드러나는 군요.

닥쳐. ...듣기는 다 했다고. 그냥 그렇게나 아끼는 아들이 자신의 자살특공대에 들어가는 걸 왜 제독이 몰랐었을까 하는 게 궁금할 뿐이야. 이미 떠버린 후에는 공식적인 루트 아니고서야 혼자 내리게 할 수도 없을텐데.

그러네요. 아버지를 등에 업고 몰래 들어온 거니, 아버지가 아셨을 수도 있겠군요. 혼자 생각했을 땐 나름 철저하다고 생각했는데... 잠깐, 그렇다면 왜 아직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걸까요? 이상하네요.

흠, 그러게...? 스팍, 어이. 콘솔만 만지지 말고 이야기에 좀 껴들어 봐.

 제 생각엔, 마커스 제독에게 엔터프라이즈와 대위는 고려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그러니까 네 말은 그 양반은 엔터프라이즈고 자기 아들이고 죽던 말던 아무 신경도 안 썼다고? 심지어 이 어린 애가 여기 들어와 설치던 자길 막아세우던 죽여버렸을 거 라고?

치프, 진정하세요. 전 괜찮습니다. 이미 다 큰 자식이 전쟁판에 끼여든다고 스스로 선택 거니까, 아버지도 뭐라 하실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죠. 아버지는 그런 분이시니까요. 제가 싫다 그러면 당황한 표정으로 말문이 막혀 고갤 돌려 버리는 분이시죠. 저도 만일 제가 죽었더라도, 아버지를 원망하진... 않았을 겁니다.


정말 원망치 않을 자신이 있나, 칼 마커스?

진한 갈색과 녹색이 섞인 눈동자가 또렷하게 저를 바라본다. 그녀의 옆으로 길게 내린 머리는 이미 푸석하니, 오래 전에 그녀의 생명활동이 끝났음을 대신 보여주고 있었다. 고갤 끄덕이자, 그녀는 내 손에 페이저를 건내줬다. 차갑고 선명한 감촉이다. 친절하게 사살 모드로 바꿔준 닥터는 내 허연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 보다가 그녀가  내 손을 감싸안아 얼결에 양손으로 쥔 페이저의 총구를 자신의 가슴을 찌르게 했다.

그렇다면 자넨 자네 아버지가 누굴 죽여도 괜찮단 말이군?

총구로부터 전해진 온기가 역으로 내 손을 타고 흐른다. 페이저가 미지근해지디 못해 연기가 오를 정도로 뜨거워져도 나는 그걸 놓지 못한 채 쓰러진 시체를 바라봤다. 반으로 갈라진 시체는 속에서 연기를 뿜으며 타들어간다. 늘어진 전선이 그녀의 등에 닿아 있었다. 타는 냄새가 고약해지자 이내 주변은 그런 시체들로 가득해진지 오래 전이었다.

자네는 스스로가 죽는 것도 개의치 않아 했잖아. 그런데 왜 주변 사람의 죽음에는 동요하지?

칼. 하고 덧붙여오는 목소리가 달았다. 웃는 목소리는 나를 향했다. 나로 인해 웃는 사람은 이렇게 다정하게 보였구나. 작지 않은 그녀를 안았다. 페이저가 어디 갔지? 죽은 그녀는 따뜻하다가 차가워져 간다. 차갑다 생각하자 그녀는 얼음덩이가 되어 바닥을 찧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고싶지 않았으나 제 손이 얼까봐 그녀를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자, 칼. 다시 묻겠어. 죽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페이저는 나를 향해 있었다. 그녀의 피로 물든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페이저는 살상모드다. 총구는 나를 향한 채, 미동도 없이 찔러오다 내 이마를 꾹 누른다. 그녀의 체온 빛이다. 뜨겁고 따뜻한 색이다. 녹아내리는 그녀는 마지막 힘으로 내게 페이저를 쏜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죽은 나는 죽은 그녀와 함께였다. 답은 '아니요'이고 나는 그녀와 나. 그리고 아버지를 원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