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스타트렉

커크스콧 :: 죽은 사람들

annina 2016. 11. 7. 17:42


※ 사람을 잃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는 커크가 인명피해가 없다고 망상하다 스콧에게 들키는 이야기






몇백이 가득 들이찬 작은 배. 도망갈 수도, 고발할 수도 없는 작은 왕국. 요격당하기 쉽게 빛나는 브릿지에는 그 모든 사람들을 책임지는 선장이 홀로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홀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스스로의 고독감에 잠시 침묵하다 자리를 비워둔 채 조금 울고는 다시 의자로 돌아왔다.

배 한 척에 그의 손이 안 닿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바삐 움직여 왔고, 못하는 일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그런 일이 있더라도, 그는 그는 언제나 기지를 발휘하여 탁월하게 해결해내곤 했는데, 그 덕분에 그는 단 한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은 유일한 선장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엔터프라이즈를 운용하고 있었다. 네로 선장, 칸을 비롯해 얼마전은 에디슨을 물리치며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도 겸손하게 진급을 미룰 뿐만 아니라, 부선장을 선장 자리에 추천하는 등. 미담만 꾸준히 늘고 있는, 미모 출중의 젊은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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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버릴 게 없는 걸. 자서전 홍보 문구처럼 보이는 말들을 곱씹으며 그는 밝은 불이 꺼진 복도를 걸었다. 컴컴한 복도는 창백한 등이 일렬로 서있을 뿐, 생물 조각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외로웠다. 저 멀리서 밝게 빛나는 것도 주기적으로 자외선을 공급해주는 장치일 뿐, 어떠한 생명의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없는, 하얀 엔터프라이즈. 그는 그것이 자신의 소유임이 자랑스러웠고, 그 안에 든 유망한 크루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며 결코 다른 배로의 발령을 원치 않으며, 어떤 이유에서든지 배에서 내리려 하지도 않는 것 또한 고마웠다.

갑자기 등 뒤에서 잦은 발소리가 투닥대더니 거기, 어이, 캡틴. 헉헉대며 커크의 곁으로 온 스콧이 핀잔을 주자 그는 작은 밤톨머릴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스콧이야 말로 커크가 발굴해낸 제일의 천재였다. 스콧은 그런 캡틴을 못마땅한 듯 혀를 차고는 패드를 꺼내 여러 레드셔츠의 프로필을 띄웠다.

"저번처럼 또 사람 말 무시하지 마시고 이번엔 제대로 처리해주쇼. 엔지니어 쪽은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한데, 자꾸 그렇게 굴면 워프고 나발이고 망할 리플리케이터 하나도 제대로 못 굴릴 꺼란 거 잘 알아야 할꺼요."
"말투가 그게 뭐야, 스코티. 응?"
"나도 이젠 못참으니까 하는 말이라고! 거, 당신 일 안하고 이렇게 농땡이 부리는 거 뾰족귀 부함장한테 이르기 전에 일 마저 해둬!"
"내가 안한 일이 어딨다고?"

불길한 기운이 기관실장의 등골을 타고 올랐다. 그의 캡틴은 저번 보고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하며 건성으로 그의 말을 넘기고선 정식 보고서를 올리란 말로 그를 물렸다. 지금 엔진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해야할 일은 큰 정비, 작은 정비 할 것 없이, 임무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손은 한정되어 있었다. 스스로가 얼마나 유용하고 효율적인 임무배치를 하고 시스템을 짜더라도, 이 넓은 배에선 기술팀이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다른 옐로, 블루 할 것 없이, 애송이든 고참이든 얼굴에는 그늘만이 가득한 레드셔츠가 좀비 꼴을 하고 복도를 걸으면 누구라도 그들의 어깰 두들겨줬다.

"인원보충 말이요! 인원보충! 저번에 요크타운에서 할 예정이었는데 당신이 승인을 안하는 바람에 우린 환영식만 하고 그 녀석들을 다시 내려줘야 했다고!"
"인원 보충이라니? 그렇게나 일이 많아?"
"일이 많은 것도 많은 거지만..."

엔터프라이즈의 외피를 뚫고  들어온 외계인에 맞서 싸운 이들 중 다수는 레드셔츠였다. 그들은 다른 셔츠들이 탈출 포트에 타도록 몸싸움을 벌였고, 총기를 사용하며 시간을 벌었고 끝내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인원이 제일 많았던 탓에 빈자리도 그만큼 큰 그들이 인원배치를 원하는데, 함장이란 사람이 하는 말이... 일이 많으냐니? 스콧은 차마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하다 그의 선장에게 죽은 이들의 프로필을 넘겨줬다.

"...거, 저번 인원보충도 부선장 통해서 했다더니, 진짜 였구만."
"인원보충이라니, 아까부터 계속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스코티. 우리 크루들은 5년 임무 시작하기도 전부터 그대론데."
"나야말로 당신이 무슨 말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저기 지나가는 파란 머리 소위 보이쇼. 쟤도 몇달 전에 아카데미에서 보충 받은 햇병아리라고."
"...? 무슨 말이야. 여긴 아무도 없는데."

스콧은 일자로 입을 다물었다. 시프트와 시프트가 바뀌는 도중이라, 그들이 있는 복도는 캡틴과 기관실장에 거릴 두고 오가기는 하지만, 결코 아무도 없다 말할 지경은 아니었다. 왁자지껄하던 복도에 한기가 돌았다.

"당신 지금 당장 닥터 맥코이한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요? 인원보충 건은 싫어도 부선장이랑 이야기할테니까 당신은 빨리 식베이로 가버리쇼. 저번에 탐사했던 곳에서 이상한 게 당신한테 묻은 모양이니까."

커크의 눈에 복도는 아직도 낮은 채도를 유지한 채였다. 스콧의 손에 이끌려 맥코이를 보러가던 와중에도 그는 싸하게 식은 스콧의 얼굴을 재밌게 볼 뿐 자신에게 어떤 이상이 생겼다곤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보다 엔터프라이즈가 조용하다. 그렇게 여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