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한니발

윌니발 :: 동물

annina 2015. 2. 8. 14:13

시즌2파이널 스포





그저, 평소와 같은 나날이었을 지도 모른다. 윌은 자신의 집에서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원래 같으면 울려야 할 알람은, 건전지가 다 된 시계 탓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윌은 목이 졸리는 꿈을 꾸며 일어났다. 늘 나오는 그 동물이, 자신의 목을 눌러왔다. 압착 프레스로 눌리듯이, 그 사이에 윌은 이상한 소음도 들었다. 마치 기계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 숨이 가빠져 가면서도, 윌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뜰 수도 없었고, 앞에 있는 이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단지, 배가 따가웠다. 겨우 눈이 떠졌을 때, 그 동물은 한 발자국, 그리고 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윌은 그것이 숨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 동물은 두 발자국 물러나 윌을 바라보았다. 윌은 상체를 일으켜 그를 응시했다. 동물과, 인간의 마주침이었다. 윌이 따가운 배를 만지려고 손을 들자, 동물은 윌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의 머리가 윌에게로 가기 전, 그는 결국 뿔로 윌을 찔러버릴 수 밖에 없었다. 윌은 자신의 배에 꽂힌 뿔을 바라보았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닐테 였다. 윌은 들어 올린 손을 그대로 동물의 머리에 얹었다. 윌의 배에 뿔이 고정된 채 동물은 물러나지도, 다가오지도 못했다. 윌은 그대로 동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동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아침을 먹고, 어쨌거나 윌은 집에 있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만져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옷깃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윌은 목을 움츠렸다. 넓지 않은 보폭으로 차까지 걸어가는 데에도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윌은 아카데미까지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 시동을 걸어 히터를 틀고, 차가 예열될 동안 차 내부 정리를 하고 앞을 바라보니

그 동물이 서 있었다. 윌은 자꾸만 배가 따가웠다. 윌은 그 동물과 다시 마주했다. 왠지 모르지만, 꿈에서도 그렇고, 예전과 같은 위압감은 그에게 없었다. 오히려 윌은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차에서 내려 그 동물에게 가려 하자, 동물은 다시 달아났다.



윌은 지루한 아카데미 수업을 하곤, 자신의 사무실에서 차를 마셨다. 석양이 비춰드는 갈대숲처럼, 평화롭고, 완벽한 하루 였었다. 머그컵을 내려놓고, 자료를 챙겨서 다음 수업장소로 향했다. 하필이면 원래 윌이 강연하는 곳에서 다른 행사를 하는 바람에, 윌은 조금 외각에 있지만 수용인원은 많은 스산한 분위기의,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는 강의실을 임시로 배정받았다. 윌은 자신도 처음 가보는 것 같다며, 벽과 바닥 등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가는 길에, 유난히 윌을 잘 따르고, 성적도 좋은 여학생을 하나 만났다. 윌은 그 학생이 조금 거북했다. 아니, 윌은 모든 사람이 거북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행위조차 의심스러웠다. 전에 누군가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실로 가는 길은 생각 외로 오래 걸렸다. 백오십명 정도 되는 학생들을 가는 길에 분명 만나야 했으나, 옆에있는 학생 말고는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가는 길에 윌은 전시라도 한 것인지, 넓지 않은 철창을 마주했다. 그 안에 또 그 동물이 들어있었다. 이번에 윌은 주저 않고 철창 안으로 손을 뻗었다. 동물은 동요하듯, 윌에게로 한 발자국 걸어왔다가도, 다시 물러났다. 윌의 손가락이 닿을 듯, 말듯 한 위치에서 동물은 조금씩 움직였다. 따각 하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지만, 윌은 좀 더 손을 뻗었다.

뿔의 끝이 윌의 손가락에 닿았다. 손에 닿는 감각이 기묘했다. 쇠붙이라도 만진 듯이, 차갑고 딱딱했고, 매끄러웠다. 윌이 손바닥을 다 뿔에 붙이려 들자, 동물은 다시금 물러났다. 윌은 자신도 철창에서 손을 빼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동물은 철장 끝에서 달려와, 까만 쇠붙이를 들이받았다. 꽤 큰 충돌음이 들리고, 동물은 철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윌을 한번 쳐다보곤 복도 끝으로 달아났다.

어느새 도착한 강의실엔, 오는 동안 보지 못한 학생들이 가득했다. 윌은 시계를 힐끗 보고,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가 끝나고, 윌은 강의 동안 늘어진 자료들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다음 시간 또 수업이 있기 때문에, 윌은 먼 사무실까지 갔다 올 생각은 없었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강의실은 이상스럽게 보였다. 아까의 그 여학생이 물어볼 게 있다며 다가왔다. 그 순간, 열린 강의실 문으로 그 동물이 다가왔다. 이번엔 책상 하나 사이로, 아주 가까웠다. 내가 그 동물에게 다가서려고 하자, 동물은 뒤로 물러나지도, 뿌리치지도 않았다. 대신 내 손을 잡은 건 옆에 서 있던 학생이었다. 고개를 저으며, 안된다고 이야기 하는 여학생을 떼어두고 다시 동물을 바라보자, 동물은 어느새 없어져 있었다.

여학생을 쫓아내고 나는 배가 너무 따가워, 입고 있는 옷을 들춰보았다. 배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따끔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의자에 주저 앉아, 있자니 동물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아까 만진 뿔, 그리고 집 앞에서 만진 머리.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그 감각을 되새겼다.



집으로 가는 길. 윌은 차를 몰고 가며, 어느새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순간 덜컹! 하고 큰 진동이 있었다. 어차피 오가는 차가 적은 곳이라, 한눈팔기 쉬웠다. 윌은 급히 차에서 내려 차 뒤쪽으로 다가갔다. 쓰러져 있는 건, 그 동물이었다. 그저 쓰러져 있을 뿐,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아무런 미동이 없는 동물의 머리맡에 앉아 윌은 그 동물을 보았다. 참지 못하고 그 동물의 목을 쓰다듬자, 동물을 눈이 슬며시 떠졌다. 이쪽을 바라보는 눈에, 윌은 멈추지 않고 동물을 쓰다듬었다.

한동안 그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윌은 자신의 시계를 바라보았지만, 시계는 시침과 분침이 떨어진 채로, 초침만 덩그러니 돌고 있었다. 윌은 동물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일어난 채로 윌의 바로 옆에 서 있는 동물은 윌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배가 난자된 듯이 아파져 왔다. 무릎을 꿇자, 동물은 자연스레 윌을 그의 등에 태웠다. 그리곤 뛰지도 않고 또각또각 걸어서, 윌의 집으로 향했다.

윌은 어느새 도착한 자신을 집을 누워서 바라보았다. 동물의 등은 생각보다 너무 편해서, 윌은 그 위에서 잠이 들뻔하였다. 이렇게 안도감을 받는 것이 마치 처음처럼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 동물이 침실까지 들어와, 윌을 내려놓았다. 윌은 자신을 배를 보았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아니, 아무것도 없어야 했지만, 어느새 흘러나오는 피는 걷잡을 수 없었다. 벌어진 살 사이로. 동물은 뿔 때문에 다가오지도 못한 채,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윌은 그 모습을 보곤 손을 뻗었다. 뿔 사이로 들어온 윌의 손을 동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기증이 나 침대에 제대로 눕자, 동물은 다리를 꿇고 윌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윌은 동물의 뿔 끝에 피가 묻어 있음을 보았다. 뚝 뚝 흐르는 그것은, 분명 자신의 피라고 생각하며, 윌은 동물을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저 알고보니 상징성 놀이를 엄청 좋아하네요. 순록이지만 일부러 동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들 아시는 그 뿔 달린 그거요. 윌은 꿈 같은 걸 꾸고 있는 겁니다. 시즌2 파이널 이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