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나쁜녀석들
정문구탁 :: 열정
annina
2015. 2. 9. 18:42
1. HATEFUCK
이 새끼가, 아...
얼마 전에 깎아서 아직 거친 손톱을 이정문의 어깨에 박는 오구탁. 두 사람은 어스름한 하늘을 끼고, 침대도 아닌 쇼파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이정문은 오구탁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움직임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오구탁이 어떤 단발마를 지르던지, 저항하던지, 다 듣고, 맞으면서도 그와 관련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의 사랑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하고 오구탁은 종종 생각하곤 했지만 그런 생각을 이어 나갈수록 비참해지는 것은 자신이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정문은 구탁의 머리채를 잡은 채로 말했다.
"당신도 나한테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게 몇 주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던 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오구탁은 그 말에 이정문을 올려다보았다. 정문의 어깨와 등은, 오구탁의 손톱 탓에 난 온갖 상처로 가득했다. 가벼운 스크레치도, 딱지도, 피가 나는 것도, 흉터도.
이제 와 저런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오구탁은 자신의 위에서 예전과 같이 움직이는 이정문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또 어느 날, 구탁은 관계 후 경련이 일어날 것처럼 떨리는 다리를 주무르곤 일어나려는 데, 정문이 그의 손목을 잡아왔다. 오구탁은 그에 반항하지도 못한 채, 그곳에 서 있었다. 끌어당기는 손에도 마찬가지로.
오구탁은 도저히 이정문의 생각을 알 수도 없었다. 그의 행동 또한. 사실 제대로 밀어낼 수도 없었지만, 이정문이 오구탁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호기심이 일었지만 정문의 반응과 행동은 너무나 단편적이었다. 증거불충분.
행위 중, 이정문은 정말로 거칠기 짝이 없어서, 구탁은 그 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직도 온몸에는 정문의 손자국이 가득했다. 샤워하면서 하나하나 숫자를 세려 보았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누렇게 뜬 모양, 아직 새파란 모양. 정문은 그걸 새겨 넣곤 안심하듯 그 위로 몇 번이고 쓸곤 했다.
열정? 그 말이 누구에게 적용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오구탁은 생각했다. 두 사람 다 그리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 말을 붙일 상대를 꼽는다면, 그건 이정문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주도해 나가는 사람. 아니 사실, 관계란 것도 없었다.
이정문은 목 뒤의 상처나, 어깨, 등의 손톱자국을 치료하지 않았을뿐더러, 그 상처가 사라지면 아쉬움까지 느꼈다. 이젠 오히려, 그를 범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 스크레치를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언제, 세게 잡은 오구탁의 옆구리에 멍이 든 것을 보곤 자신도 흔적을 남겨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2. 로망
이정문은 꿈을 잘 꾸지 않았다. 그 탓인지, 물질적인 욕구가 거의 없기도 하였다. 지식욕이라면 꽤나 있는 편이라고 자신은 생각했지만, 이정문 자체는 욕구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오구탁과 같이 지내기 전까지는.
두 사람은 어색하게 지내곤 했다. 같은 공간, 같은 침대를 쓰긴 했지만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것은 전혀 없었다. 기껏해야, 오구탁의 수사를 힐끗 보곤 조언하는 정도. 오구탁은 이정문에게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았다.
이정문은 그 관계에, 크게 불만이 없어 보였다. 있어도 기껏해야, 오구탁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정도. 그건 어쨌거나 밤에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엔 그 불만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정문이 오구탁이 근무하는 형사과에, 다른 팀에서 짧은 며칠간, 고문을 봐주기로 한 것 때문이었다. 원래 같으면 정문의 교수가 종종 취미 삼아 하던 일이었지만, 그 교수가 해외로 출장을 가버려서 경험이 있는 이정문을 추천한 것이다.
그래, 포인트는 이거다. 정문은 오구탁이 서 내에서 일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오구탁의 존재 자체도 낯설었지만, 그 무엇보다 거부감이 든 것은 웃는 것. 사건이 끝나고, 이정문은 오구탁과 지내며 그가 다시는 웃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정확히는 이정문과 같이 있을 때 웃지 않은 것이었다. 정문은 원래 미소, 웃음, 그런 것들에 체질적으로 크게 민감하지 못해, 사람들의 표정을 구분하는 데에 있어 웃음이란 제일 약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오구탁은, 그는 달랐다. 평소 보던 표정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 그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이정문은 그 얼굴을 보자마자, 몸이 얼었다. 정문과 눈이 마주친 오구탁 또한.
두 사람은 서 뒤쪽에서 마주했다. 오구탁을 내려다보며, 이정문은 오구탁의 얼굴이 평소 보던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구탁은 이정문이 도와줘야 할 사건 파일을 보며, 이정문에게 형사나 피해자나 증인, 어쨌거나 만나는 사람마다 적당히 하라고 하며 사건 파일을 돌려주었다.
적당히? 이정문에게 이보다 어려운 말이 있을까. 이정문은 파일을 들고 오구탁을 바라봤지만, 그는 이미 다른 형사의 부름에 서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이정문이 오구탁이 자신을 원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 연성은 그것을 위한 여정 이라고 생각 하는 중.
이정문은 오구탁이 죄책감때문에 자신을 상대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오구탁도 자신을 원한다고 생각함. 손톱자국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