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늘 덮개에 다가가면 변을 당한단 말이 공공연하게 돌 때였다. 발가락이 돋아난 채 유폐되어 있던 어머니가 죽은 날, 그 실 같던 머리카락은 하늘에 대고 해초처럼 흐늘거렸다. 당신은 햇빛을 보고 온 날부터 머리가 타들어 갔다고 들었다. 붉던 당신의 머리가 태양을 닮아 노랗게 되고 포말처럼 하얗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고도. 처음 본 당신은 이미 새어버린 머리와 낡은 미소를 지은 채 하늘만을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당신만을 보고 당신을 가둔 철문을 열었을 때, 당신은 나를 보지도 안아주지도 않은 채 당신 머리색처럼 빛나는 수면 따라, 내가 따라가지 못할 헤엄으로 날아갔다.
나를 낳고 난 후에, 당신은 더는 수면 위에서 숨 쉬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버려졌다. 그 높은 배에서 떨어져, 수면에 닿아 다리에 물비늘이 생기기 시작하며, 당신은 아가미 가득 거칠게 숨을 들이켰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탓하며, 이곳에서 탈출해 당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생각만을 했을 터이다.
눈에 띄는 흰머리에 여러 생물들이 당신 곁에 다가왔다가도, 당신의 속도에 미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나는 당신의 뒤꽁무니에 매달려 겨우 당신을 따라 수면 위로 향했다. 당신은 나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당신의 무덤을 향했다.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당신을 따라 지상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헤엄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향해 달아난 당신을 대신해, 당신을 따라 올라간 하늘은 내게 파란색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던 산소를 폐 가득 채워 떠나며 어째선지 내게 입 맞췄다. 처음으로 닿는 당신은 차가웠고, 시렸고, 그 손길에 온기라곤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신은 따뜻했다. 당신의 눈물은 내가 느낄 수 없게도 뜨거웠다. 당신이 사랑했다던 인간도 이처럼 뜨겁진 않았을 텐데.
당신은 뜨거운 암초를 껴안고, 미역을 몸에 두른 채 꺽꺽거렸다. 당신 속에 든 바닷물을 전부 뱉어내려는 듯, 짜디짠 눈물을 흘렸고 모든 숨을 뱉어내었다.
2.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인어가, 물질하는 이들을 놀리는 것에도 진력이 났던 날이었다. 어린 모습을 보고 용기가 났던지, 어느 인간이 다가와 속삭였다고 한다. 하늘에 아른대는 햇빛이란 걸 맛보면,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잃고 소릴 내는 놈들로 전락하고 만다고. 그 말을 들은 어린 인어는 놀라 빛이라곤 닿지도 않는 암초 동굴 안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 어린 호기심이란 걸 막을 수는 없었는지, 인어는 다음 날 이야기를 전해준 이를 찾아 다시 그 해수면 쪽으로 나아갔다. 애초에 인어의 시력으로 사람을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그는 그 이야기꾼을 찾아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다고 한다. 한 손에 번쩍이는 작대길 든 이야기꾼은 웃는 소릴 내며 인어의 몸에 그 날카로운 걸 찔러 넣었다. 해수면으로 딸려 올라가는 인어의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것들은 인어가 해변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동족살해가 없는 인어들에게는 그러한 급사는 병환으로 인한 것밖에 없었는데, 일방적으로 그 안정된 죽음의 권리가 박탈당한 채 인양되어가는 인어의 모습이란. 모여든 생물들은 그 잔혹함에 혀를 내둘렀다.
핏물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바닷물에 모든 이들이 코를 틀어쥐고, 어린아이들을 물렸다. 붉은 바다가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건만, 그 피가 인어의 피라 하니 절로 꺼려지고 구역질이 나는 듯했다. 잘린 꼬리지느러미가 수면을 떠다니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저앉자 모두가 그곳을 피했다. 어떤 이들은 돌을 들어와 그 위로 얹기도 하였고, 산호 조각을 엎어두기도 했다. 쌓이고 쌓여, 그곳은 일종의 무덤이나 작은 암초처럼 보이게 되었다. 더불어 이러한 이야기가 쌓인 그 덩어리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 등이 섞여 하나의 척화비처럼 그렇게 덩칠 불려갔다.
3.
조윤은 아직도 하얀 실이 엉켜있는 암초에 자리 잡고 앉았다. 언젠간 뾰족하게 튀어 올랐을 바위는 파도와 인어들의 안식처로써 유용하게 그의 등을 깎아내린 채였다. 손때가 탄 건지, 어느 배가 부러뜨리고 간 건지, 뭉툭하게 솟아있는 암초를 쓸어내리며, 조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어머니도 이곳에서 그의 인생을 만들었을 테다. 수면보다 위에, 고갤 완전히 젖혀도 보이지 않는 곳에 그 남자가 서서 그녈 내려다보았을까. 아니면 이야기처럼 어머니가 그를 찾아갔을까. 마녀를 만나 꼬리를 뽑히고 다릴 얹어 억지로 봉합하는 사이, 생 피부가 꿰매진 그는 비명 한 줌 허락되지 않아 입술이 다 부르텄을 것이다. 조윤은 파도가 그를 덮쳐도 꿈쩍도 안 하고 눈을 뜬 그대로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중략)
어느 작은 고깃배는 물고기는커녕 사람을 잔뜩 태운 채 시원찮은 모터로 털털 거센 바달 뚫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선 사내는 늘어져 지린내를 풍기는 그물은 걷지 않고, 낚싯대나 드리운 채 담밸 피우고 있었다.
조윤의 속돌 따르지 못한 물고기들이 본능처럼 그를 쫓아 도착하기까지 몇 초 동안, 조윤은 그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았고, 사내는 무심히 찌를 보다 그 옆으로 불쑥 튀어나온 조윤에 깜짝 놀라 뒤로 엎어졌다. 뱃머리에서 굴러떨어진 그에 조윤이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그의 낚싯대가 주인 손에서 떨어져 내렸다. 물속으로 쑥 내려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낚싯대를 피한 조윤은 다시 툭 튀어 올라 더벅머리의 사내가 있었던 자릴 노려보았다. 날카로운 낚싯바늘이 꼬리지느러미를 간질이자 조윤은 아예 자릴 피해, 넘어진 사내가 보일 배허리 쪽으로 헤엄쳤다. 사내는 아직도 일어나지 못했는지, 파도 소리 사이로 끙끙대는 신음만을 내뱉곤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머리라도 깨진 걸까. 의문을 표하던 조윤은 이내 바늘에 스쳐 혹시 흠집이라도 났나 하고 자신의 꼬리를 살폈다. 매끈한 것을 보고 나서야 다시 고갤 올려 위를 살폈지만, 이런저런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만 난무할 뿐, 사내는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살이 거세어 배가 기우는 걸 피한 조윤은 점점 더 멀어지며 선상 위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까만 머리. 상한 비늘처럼 매끈하지 못한 피부, 그리고 다리. 그녀가 말했던 것과 비슷했다. 우습게도.
4.
며칠 내내 제대로 바다를 보지도 못했다. 띵하니 울리는 머릴 붙잡고 며칠이나 휘청대는 바다 위를 지낸 엄중호는 쩝쩝 소릴 내곤 누군가 앉아 있는 의자 위로 침을 뱉었다. 라면 스프 안에 든 파가 끼이기라도 한 듯 이 사이가 불편해 수 십 번이나 잇소릴 내다, 손가락을 집어넣다 하다 주변 시선이 모이자 그는 입안으로 넣었던 손 그대로 축축이 젖은 머릴 헤집곤 선실을 나왔다. 습한 공기가 마치 그날과 같아서, 중호는 일부로 바다나 해안선을 보지 않으려했다. 한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 지린내 나는 고기 그물을 만지며, 중호는 뱃머리 아래에 나타났던 검은 머리의 인어를 떠올렸다. 낡다 못해 삭아 바스라 지도록 손질이 되지 않아 숭숭 뚫린 그물을 엮어보려 하다, 끈도 몇 없는 그물에 손이 엉키자 중호는 미련 없이 그 비린내 나는 것을 내다 배 선미나 선두에 밀어버렸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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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
중철본 (16p~20p 예상)
2000원 (통판은 우편이나 등기비를 추가로 부쳐주시면 됩니다)
마감 잘치거나 하면 최김or치원마박 초단편이 하나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후에 무료 공개 예정은 없습니다. 본 책 내용의 외전이나 이후 내용이 연재 된다면 책을 사신 분들만 볼 수 있게 암호를 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