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교수노릇을 해야하냐 이거야.
당신 나이는 되야 의심 사지 않을 테니까.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 구탁은 정문의 쇼파에 기대며, 정문의 전공서적을 뒤적였다. 정문은 구탁의 맞은 편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경을 낀 구탁은, 앞부분을 넘기고 중간부터 두꺼운 책을 읽다가, 책을 덮었다. 정문도 구탁에게 설명할 걸 생각하며 자신의 책을 읽다, 구탁을 바라보았다. 구탁은 끼고 있던 안경을 올리고 눈을 비볐다.
왜 그래?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구탁은 자신이 멍청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책에 적힌 활자들은 읽으면 읽을 수록 꼬이고 핑그르르 돌아갔다. 황망히 정문를 바라보니, 정문은 구탁에게 손을 내밀곤 읽던 책을 달라 했다. 구탁이 몸을 기대있던 책을 건내자, 정문은 가방에서 형광펜을 꺼내 깨끗한 책에 줄을 그었다. 오롯한 노란 형광펜은 단어 위주로 그여 있었다.
어차피 제대로 안 물어볼꺼야. 심하게 물으면 나한테로 돌려.
...그래.
구탁은 정문의 쭉 뻗은 손가락을 따라, 글자들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단어들은 착착 정리되어 갔다. 구탁은 쇼파 위에서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문을 두들기고 들어온 것은 유미영이었다. 그녀도 정문과 같이 구탁의 제자 역활을 맡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구탁과 같이 있지 않고 식장에 들어서자마자, 다른 곳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미영은 다른 역할을 맡은 웅철과 태수에게 가기 전, 아침 일찍 구탁의 집에 들렀다.
미영에게 문을 열어주려 나온 것은, 씻다 나온 건지 젖은 머리의 정문이었다. 정문의 집이 따로 있었기에, 구탁이 투덜대며 나올 꺼라 예상한 미영은 조금 당황한채 구탁의 집에 들어갔다.
오구탁은 아직 자는 중이야.
아, 네. 여기서 잤어요?
무슨 일이야?
정문은 미영에게서 돌아서서 머리를 말렸다. 미영은 식탁에 가방을 놓고 그 안에서 책 몇권을 꺼내 들었다. 정문은 책을 가져다 거실로 갔다.
교양철학 책이에요. 전공책보다는 쉬울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미영은 정문을 따라 거실로 향했다. 거실은 정문의 책들과 펜들로 어지러웠다. 몇몇 용지에는 합리론이니 경험론이니 큰 글자와, 형이상학이라는 글자들이 나열된 긴 자필문서도 있었다. 미영은 철학에 관해 정말 교양 정도만 아는 터라, 그 작은 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정문은 미영을 등지고 쇼파 쪽으로 서 있었는데, 미영은 그에게 가려 쇼파가 보이지 않았다. 정문은 몸을 숙여 쇼파에 누운 사람에게 이불을 챙겨 주었다. 그 사이로 미영은, 쇼파에 있는 사람이 구탁임을 알 수 있었다.
넓은 쇼파 안쪽에 파묻히듯 누워 있는 구탁의 옆에, 정문이 앉아 미영이 가져온 책들을 살폈다. 미영이 보기엔 팔랑이며 슥 훑어 보는 것이었음에도, 정문은 그 다섯권의 책 사이에서 세권을 골라 미영에게 돌려줬다.
그건 가져가.
미영은 대답 없이 가방에 책을 넣었다. 나가려고 몸을 돌리자 코트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렸다. 벨이 두번째 울릴 때 미영이 전화를 받았는데, 정문은 바로 구탁이 깨지 않았나 살폈다. 묘하게 생활감이 떨어지는 집은, 사람이 많음에도 소리가 크게 울렸다. 구탁은 그 짧은 소리에도 부스스 일어났다.
미영은 빠르게 전화를 끊고, 가겠다고 하려 정문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구탁은 정문에게 기댄채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허리깨로 내려온 이불은, 구탁의 햇빛을 타지 못해 하얗기보다 창백해 보이는 피부를 들어내보였다. 미영은 어색해 하며, 가방을 챙겼다
아, 유경감.
누워 계세요, 오반장님.
그래, 나가려던 참이야.
구탁은 미영을 보고 일어나려 하다, 미영과 정문의 만류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정문은 구탁의 무릎에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영은 구탁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현관으로 나섰다.
모레까지 되겠어요?
돼. 오구탁이 멍청하진 않잖아.
다 들린다!
미영은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서도, 구탁이 있는 거실 쪽을 바라보았다. 정문은 열린 문을 닫으며, 그 시선을 막아 섰다.
갈께요.
정문은 대답없이 문을 닫았다.
하노님 리퀘로 오구탁 가르쳐주는 이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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