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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한니발

윌니발 :: 소분







1. 춤

노래는 흘러나오고, 나는 당신을 따라 발을 움직였다. 마치, 끈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그 끈이, 나를 놓지 않는다. 나는 내 의지가 아닌채, 당신을 따라갔다. 이리저리 칼을 휘두르고, 피가 솟아오른다. 나는 그 피를 뒤집어쓴 채로 좀, 웃었던 것 같다. 당신도 웃었고, 나는 또 춤을 추었다. 튀어오르는 피와 살점이 벽지를 더럽혔다. 흥분해서 장갑을 벗으려 들자, 손을 잡아 오는 당신이 있었다. 당신을 벽으로 밀어 혀를 댔다. 당신의 목에 튄 피가 달았다. 당신이 내 뒤통수를 붙잡아 당겼다. 나는 당신의 뜻대로, 당신의 목에 이를 세웠다. 내 몸애 튄 피들이 당신에게 옮겨 붙었다.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당신은, 내가 가져온 피에 물들어 갔다.

눈을 뜨면, 그 일은 마치 꿈과 같다.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며, 나는 무심코 그곳에 나를 투영했다. 이전의 나는 아무 것도 없어, 연쇄살인마들이 들어올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안에 새로운 살인마가 들었다. 나는 사건에 집중하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계속해서, 연쇄살인마와 내 안의 살인마가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여자를 죽이는 방법, 그녀의 딸을 죽이는 방법, 그리고 들어온 남편을 죽이는 방법. 그 순서들이, 그들의 심리가 내 머리 속을 점령했다. 다른 각도에서의 여러 방법들이 교차되었다. 무엇이, 범인의 방식인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눈을 잠깐 감았다가, 증거들을 중심으로 사건을 스케치해갔다. 지극히, 평범하게.


또 다시, 그러나 이번엔 칼이 아니었다. 당신은 나를 움직였고, 나는 당신에 맞게 춤췄다. 당신은 한번도 나서지 않았다. 내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살인마를, 그는 참는 것일까 아님, 나와 있지 않을 때에 죽이고 다니는 것일까. 함께 있지 않을 때 살인을 하고 다닌다니. 화가 났다. 나는 당신과 있을 때 살인을 하기 위해 이렇게나 참는데. 들고 있는 부지깽이를 쑤셔박았다. 뒤에서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화가 났다. 부지깽이를 힘겹게 빼내고, 그것을 들어 머리 쪽으로 내려쳤다. 죽여버릴꺼야. 작게 중얼거리자, 그가 뒤에서 웃으며 말했다. 이미 죽었습니다, 윌.


당신이 혼자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뒤따랐다. 하이브리드 차가 미행에 좋다고 했던가? 그는 한번도 멈칫거리지 않고, 마치 그처럼 부드럽게 차를 몰았다. 도착한 곳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 창고였다.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나왔다. 손에 박스같은 걸 들고 있는 것을 빼면 들어갈 때와 같은 깔끔한 복장으로. 그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그 창고로 들어갔다. 약간의 허브 향기를 제외하곤,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내가 기대했던 건지, 무서웠던 건지 모를 피 냄새도. 보이는 것도 없었고, 나는 바닥을 두드렸다. 넓은 카펫은, 발소리를 없앴다. 한쪽 구석으로 가 카펫을 말자, 안쪽으로 음각된 손잡이가 있었다.

당신은 어지간히 지하를 좋아해. 그렇지? 그는 그저 웃을 뿐, 여전히 나서지 않았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당신의 살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화가난다. 당신의 손에 칼이 쥐었다. 이번엔 내 차례야. 그렇지 않습니까, 닥터 렉터? 당신은 나를 못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칼을 쥔 손으로 내려온 머리를 쓸어올렸다. 나는 그 동작을 넋이라도 놓은 듯 바라보았다. 그가 누워 있는 것에 다가가는, 그 동작도. 나는 마치 신이라도 영접한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칼을 꼽는 동작은 순식간이었고, 그만큼 강렬했다. 순간의 힘이, 모두 완벽하게 피사체에 전달되었다.


이후, 나는 그와 함께 사냥을 다녔다. 사냥을 좋아하시나요? 당신은 그런 야만적인 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내게 그것은 사냥이었다. 당신에게는 도축과 더 가깝지 않을까. 일련의 작업이 끝나고, 흥분한 자신을 다스리려, 구석에 서있으면 당신은 정리를 다 하고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내가 올려다 보면, 당신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가 묻은 장갑을 벗어던지고. 그럼 나는 당신에게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신에게 모든 영광을.








2. 피크닉

바람이 따뜻했다. 잔잔했고, 기분 좋은 정도의 햇빛이 내렸다. 윌은 그와 함께 걸으며, 팔을 흔들었다. 길 가는 이들이 보던 말던, 그와 손도 잡았던 것 같다. 그가 들고 있는 피크닉 바구니가, 그와 잘 어울렸다. 아침부터 저 피크닉 가방을 챙긴다고 앞치마를 메고 부지런히 움직이던 게 생각나서, 자신이 든다고 했지만 오히려 돗자리나 잘 들라며 타박을 받았다. 옅은 그늘이 진 나무 아래는 청량감이 들정도로 상쾌했다. 돗자리를 펴고 한쪽에 앉자 그가 내 옆으로 누워왔다. 그의 옆에 누우며, 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냐는 듯, 그가 인상을 쓰고 있기에 손을 들어 그의 얼굴에 앉은 무당벌레를 내 손가락에 옮겨태웠다. 내 손가락을 타고 역행하던 벌레는, 다시 반대로 손 끝을 향하더니 이내 날아가버렸다. 그가 고맙다고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가 싼 베이컨 샌드위치와 맥주를 마시며, 돗자리 주변 파릇하게 올라온 잔디들을 바라보았다. 잘 정리된 잔디가 누굴 닮은 것 같아서, 그를 바라보자, 샌드위치를 오물거리고 있는 그가 귀엽게 보였다. 무의식 중에 손을 뻗어 그를 만지려 하자, 그가 움찔거리며 몸을 뺐다.

"왜 피하세요?"
"아니요... 아닙니다. 윌."

잠시 그가 말을 멈춘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아니긴요, 몸 빼셨는데. 그가 샌드위치까지 내려놓자,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왜, 이제 저랑은 뭐 먹기도 싫으신가보죠? 당신이 만든 건데 계속 먹지 그래요? 주위가 조용했다.

"먹으세요."
"아뇨, 배부릅니다."
"먹여드려요?"
"..."
"억지로 처박아야 먹으실 겁니까?"

그는 한숨을 쉬긴 했지만, 내려놓은 샌드위치를 들지는 않았다. 그에게 다가가자, 그 만큼의 공간이 또 생겼다. 잔디가 그와 내 사이를 가득 채웠다. 욕설을 짓씹으며, 다시 한발짝 다가가자 어느새 피크닉 바구니와 돗자리는 없어져 있었다. 그는 정장차림으로 의자에 앉은 채, 여유롭게도 나를 올려다 보았다.

"윌. 윌? 윌..."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부르는 그를 쫓아 가자, 그는 개럿 제이콥 홉스를 목졸라 죽여버리고, 옆의 애비게일 홉스를 붙잡았다.

"당신의 다음 피크닉인가요?"

그가 내게 말했다. 애비게일의 머리에 찻잔을 얹더니, 그대로 밀어버렸다. 떨어지는 애비게일은 바닥에 착지했고, 찻잔 또한 멀쩡했다. 그는 애비게일의 옆에서 나를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윌, 윌, 윌."

동시에 애비게일은 자신 머리 위의 찻잔을 들어 땅에 내리쳤다. 큰 소리와 함께, 내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전력 때 쓰다가 너무 이상해서 킵 해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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