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인 묘사 조금 있음.
※초반, 후반 글체(?) 다름.
비가 오는 날이었다. 지치도록 우중충한 날은, 아침부터 예보룰 보지 않아도 우산을 챙기게끔 했다. 물론, 늘 아슬아슬하게 오는 오상식에게 우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가방에, 젖으면 안되는 스크랩 자료가 든 탓에 상식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양복 상의를 벗어 가방을 감쌌다. 하필이면 겉옷도 놓고 온 탓에 상식은 건물을 따라 흐르는 빗방울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상식의 차는 아내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간 아내 탓에, 우산을 놓고 온 것이지 않을까. 하고. 상식은 더 어둑해지기 전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위로 흐르는 빗방울 하나하나에 질투가 났다. 동시에 아까웠고, 안타까웠다. 붙잡을 수 없다는 것에. 그래는 이미 푹 젖은 상식의 위로 우산을 드리웠다. 오상식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품 안에 끌어 안은 가방을 놓지 않았다. 장그래는 정신이 없는 듯한 오상식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한시간 동안 세찬 비가 내리는, 지옥과도 같은 곳을 지나온 오상식이, 혼자 무언갈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상식은 장그래가 이끄는 대로 차가운 몸을 움직였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하려 했으나, 지친 몸뚱이는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긴건지,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를 감싼 장그래가 젖지 않을까 하고 어깨를 움츠리자, 장그래는 그를 더 껴안아 왔다. 상식이 보기에, 우산이 너무 자신의 쪽으로 기울여져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상식도 장그래 쪽으로 붙었다.
장그래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장그래는 문을 잠그고 현관에서 움직이질 못하는 오상식을 도왔다. 그의 품에서 가방을 떼내자, 상식은 팔을 늘어뜨린 채 벌벌 떨었다.
"차장님, 오늘은 자고 가시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갈아입으실 옷 준비해 드릴테니까 지금 씻고 나오세요."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니 상식은 알겠다고 고개는 끄덕였지만 온기를 나눠준 가방이 떨어지자, 급격히 떨어지는 체온 탓에, 그리고 감각이 없는 발에 움직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는 그런 그를 현관에 앉히고 그의 신발을 벗겨주었다. 빗물이 가득한 그것은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그래는 상식의 어깨를 부축해 욕실로 끌고 들어갔다. 그의 발은 얼음과 같아서 그래는 미지근한 물로 옷을 입고 있는 상식의 위로 물을 뿌렸다. 상식은 한참을 그러고 있은 후에야 그래의 손목을 잡고 자신이 하겠다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장그래는 물을 좀 더 따뜻하게 한 후 괜찮다며, 상식을 도와 주겠다고 말했다. 기운이 없어 휘청이는 상식은 나가라고 했지만, 그래는 그저 늦게 가서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그게 왜 네 탓이야."
우산을 안 가져온 내가 잘못한 거지. 감기가 들어 쉰 목소리가 안타까워 장그래는 오상식의 목을 감쌌다. 오상식은 놀라 물러나려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장그래의 손이 따뜻해서, 같이 젖었지만 상식과 다르게 따스한 손은 상식을 심지부터 녹였다. 굳어 있던 상식은 순간 풀리는 다리에, 저도 모르게 미끄러운 욕실 바닥에 미끄러졌다. 그래는 들고있던 샤워기 채로 그를 받아들곤, 몸을 멈췄다. 그가 너무 차가웠다.
"야, 장그래. 물."
부끄럽기라도 한 건지 고개를 숙인 상식은 자신의 등 쪽으로 쏴지고 있는 따뜻한 물을 지적했다. 장그래는 물을 끄지도, 그를 세우지도 않고 그를 안은 채 그의 위로 물을 뿌렸다. 상식은 자신을 잡고 있는 그래를 뿌리치지도 못한채, 그에 안겨있었다. 따뜻한, 지극히 따뜻한 장그래에게. 그것이 미안했다.
녹은 몸은 그렇게 따뜻하진 않았지만, 더 이상 차갑지는 않았다. 상식이 그래에게서 떨어지려 무릎을 세우자, 그래는 오히려 상식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상식을 벽에 기대게 하곤, 그래는 상식의 젖은 와이셔츠의 단추을 풀었다.
"뭐, 뭐하는 거야."
"제대로 씻으셔야죠. 젖은 거 입고 계시면 감기드세요. 이미 드신것 같지만요."
상식은 그 아래 단추를 풀려하는 장그래의 손을 붙잡았다. 따뜻한 걸 넘어 뜨거운 손은, 상식의 손에 깍지를 끼웠다.
"차장님, 저 아무것도 안해요."
"너 같으면 믿겠냐."
상식은 그래에게 꽉 잡힌 손을 움찔거렸다. 그래는 다른 손으로 그의 단추를 계속 풀어나갔다. 상식은 그걸 막지 않고 벽에 기대 있었다. 그래는 자신의 말을 지키려는 것인지, 상식이 셔츠를 벗는 것을 도와 주었다. 셔츠를 벗기 위해 잡은 손을 풀며, 장그래는 상식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젖은 상식은 꽤나 무거웠지만, 그래는 그가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상식은 그의 젖은 셔츠를 욕실 밖 세탁 바구니에 넣기 위해 나가는그래를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젖은 그래에, 상식은 자신도 손을 뻗었다가 움츠렸다. 그것을 본 그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상식은 바지만 입은 채, 닫히는 욕실 문을 바라보았다.
욕실 문이 열리고, 증기와 함께 장그래가 자신의 것이 아닌 셔츠를 손에 잡고 그 사이로 나왔다. 자신 또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었지만, 그래는 대충 발을 닦고 상식이 입을 티셔츠와 반바지를 찾아 욕실 문 앞에 두었다. 그제야 자신의 옷을 갈아 입은 그래는 세탁 바구니 안 상식의 셔츠를 내려다 보았다.
방금까지 잡고 있던 상식의 살결이 느껴지는 듯 했다. 차갑던 몸이, 자신으로 인해 종국에서는 뜨거워 지는 것까지 떠올리니, 그래는 젖은 셔츠를 들어올렸다. 욕실 안에선 아직 샤워기의 물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셔츠의 목카라에선, 젖었지만 아직까지도 상식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물에 쓸려 내려가지 않은 그 냄새가, 그래의 뇌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이럴 목적으로 모시고 온 게 아닌데. 한숨을 쉬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반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귀에는 아직 그의 샤워소리가 들렸다. 욕실 문 사이론 수증기가 빠져나오고 있었고, 그래는 욕실 앞에 앉아 상식의 셔츠에 코를 박고 수음했다. 옷이 젖는 것 정도는 신경쓸 꺼리도 되지 못했다.
수분이 지나, 그래는 더 이상 욕실 안에서 물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손을 멈출 생각도 셔츠에서 얼굴을 들 생각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쯤 되니 들켰으면 좋겠다고, 상식과의 대면을 바랬다. 이윽고, 절정이 다가오자 그래는 물소리고 뭐고,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마주했다. 손에 파정하고 그제야 고개를 들자, 상식이 목욕 가운을 입고 욕실 입구에서 그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
...
말이 없이 지나간 수분 동안, 두사람은 그저 서로를 보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상식이었다. 그래의 손에 들린 셔츠를 들어, 바구니에 넣었다. 그래는 상식에게서 몸을 돌려 바지를 올렸다. 손에 묻은 것들 때문에 상식과 교대하듯 욕실에 들어갔지만, 그 사이에도 말은 없었다.
그래가 손을 씻고 세수도 하고 나왔을 때, 그래가 챙겨준 옷을 입은 상식은 티비를 틀어 놓은 채 가방을 살피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들리고, 상식은 그래를 바라보았다.
그래의 고백은 지금부터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달, 두달, 세달, 그리고 여섯달 전.
점심시간 막바지에, 옥상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그래는 상식에게 고백했다. 우중충한 하늘은, 비를 예고 했다.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하고 내려와, 장그래는 평소처럼 일을 했다. 눈치채지 못한 오타에, 동식에게도 혼이 났다. 평소와 같은, 일상. 오후 2시 반. 상식은 그래와 외근을 갔다.
평소와 같이 조언을 듣고, 실전을 느끼고, 돌아오는 차 안은, 침묵. 이유는, 그래의 왜 대답해주시지 않으세요? 란 말 탓이었다. 또 대답 없이, 회사로 돌아왔다. 가방을 정리하고, 다들 퇴근하고, 퇴근시간이 지나서 안 막바지 업무를 하고, 밖에 나오자 비가 내렸다.
비가, 쉴새없이. 봄인 날씨는, 밤이면 아직 쌀쌀했다. 그래는 버스정류장과의 거리를 재다, 자신을 받치는 우산을 발견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30분은 전에 나간 상식이었다.
"가자."
그 한마디는, 그래에게 그저 행복한 말이었다. 그 이후, 여섯달. 그 사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까.
아무런 사인도, 말도, 어떤 행동도. 상식은 그래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두사람은 다시 부하와 상사, 부하와 그가 동경하는 상사가 되었다.
그와는 별개로, 다섯달 후. 그래는 상식과 같은 침대를 쓰게된다. 분명 침대가 두개여야 하는데, 전달된 것은 넓은 한 침대. 넓다곤 해도, 성인 남자 두사람에게 그리 넓은 것도 아니었다. 상식은 침대를 보곤 별 수 없지. 하곤 가방을 벗어 쇼파 쪽으로 던졌다. 그래는, 그럴 수 없었다.
눈 앞의 이것이 꿈이나, 혹은 그와 유사한 더러운 장난일까. 그래는 상식의 자는 얼굴을 바라봤다. 움찔대곤 했지만, 큰 움직임 없이 상식은 그래의 눈 앞에 놓여 있었다. 감은채 움찔거리며 움직이는 상식의 눈을 보며, 그래는 핥고 싶다 생각했다. 저 눈이 벌어져, 속살을 보이면 그 위로 혀를 내밀어 힕아 올리고 싶다고.
그래는 침대를 벗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세수를 했지만, 시원스럽지는 않았다. 머리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은 세면대를 타고 흐르며, 밑으로 흘러 들어갔다. 아래로, 아래로. 다시 물을 틀어 그래는 그 밑으로 머리를 집어 넣었다. 빙글빙글 도는 시야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래는, 다시 그 방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신이 그 방에, 그 침대에 누워 가만히 있을지 어떨지, 장담하지 못했다.
아래로 아래로, 그래는 외투를 챙겨 방을 나갔다. 상식은 침대에 누워, 그것을 들었다. 그저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식은 스스로 자문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쟁취하라. 그래는 용기를 내었다. 손을 내밀었다. 내민 손엔 그저 물방울만이 내려 앉을 뿐이었다. 고이고 고여, 떨어지는 것. 그래는 자신이 언제까지 손을 내민 채 유지 할 수 있는 지 궁금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가, 붙잡지 않을 것을 알고 내민 손이었다. 내치기를, 내심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 이유만으로도 접을 수 있을 꺼라. 그리 생각 했다. 접을 수 있다고.
내치지도, 잡지도 않고. 무시. 그래는 그것도 생각 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여유를 주는 그 행동은 무엇일까. 무시뿐이면, 접을 수 있다. 단지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나름의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상식은 언제나 그래에게 틈을 주었다. 그래는 모른다. 무엇이 맞는 행동인지.
상식도 모른다. 무엇이 맞는 마음인지. 마음이, 연결되는 것의 책임만 안다. 연애, 결혼, 아이. 하지만, 그래와의 연결은 그런 결말이, 과정이 아닐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식은 이미 그런 과정을 겪었고, 겪고 있다. 손을 잡지 않는 건 그 탓이었지만, 하룻동안 아내보다 오래 보는 얼굴을 내칠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엔, 단지 부하직원이라는 것이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상식은 그저 그래를 무시했을 것이다. 이전과도 같은, 마치 사제관계와도 같은, 상사와 부하 사이로.
그러나, 무시하지 않았다. 직시했다. 그 손을 내려다 본다.
보기만 한다. 상식은 그래와의 관계 진척을 나서지 못한다. 그런 욕심을 부릴 나이는 지났다. 책임도, 늘었다. 상처 받을 사람은 상식 혼자가 아니다. 상식은 그래를 생각했다. 저 자신은 생각하지 않았다. 상식은 그래의 젊음을 알았다. 젊음은 그렇게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그래는 상식의 옆에 앉았다. 용기가 없는 것은 누구일까. 이 자리에서 그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그래도 그리 용기있지는 않았다. 나아갈 것인가, 뒤처질 것인가. 아님, 정체될 것인가. 정하는 것은 두사람이었다. 행동이 취해졌고, 그것의 결과만이 남아있다.
상식이 원하는 결말이 무엇인가. 상식은 그래를 바라보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과의 연애인가? 아님 육체적인 사랑인가? 정신적인 교류인가. 상식은 그래에게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인가. 이번엔 상식의 머리가 돌았다. 빙글빙글, 상식은 가방을 내려 놓았다. 차가운 손을 쥐었다 폈다.
그래는 상식이 자신을 쳐다보다,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다가 그 시선을 따라잡았다. 가방, 손, 그리고 다시 맞춰오는 시선. 그래는, 상식의 판결을 기다렸다. 무엇이든, 이걸로 결정이 날 것이다. 내치던, 무시던, 그럴수는 없겠지만 받아 들여줄지. 그래는 상식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의 입장이 너무나 커서. 단지, 판결을 기다릴 뿐. 그 판결이 기만이던, 진실이던 가리지 않고 받아 들인다.
맹목적인 어린아이 같다. 상식은 빛나는 그래를 눈을 쳐다봤다. 아이스크림을 기다리는 아이, 그러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아이스크림이 무엇으로 만들어 졌을지 알고 있다. 독으로 이루어진 아이스크림. 하지만 아이스크림 자체를 기다린다. 그것을 먹고 죽어버릴 것을 기대한다.
상식은 입을 떼었다. 나오는 것은 한숨.
"너는, 왜 내가 좋은거냐."
"차장님이란 것, 자체로 좋습니다."
뻔한 질문과 대답이었지만, 그 속에 품은 뜻은 어떠할까. 상식은 머리를 짚었다. 피해갈 수 없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다. 진실을 말할 것인가, 혹은 그를 위한다는 위선의 거짓말을 할 것인가.
"나는..."
그리고 기침이 터진다. 쉴세없이. 열도 오른다. 계속해서. 그래는 다음의 말을 기다리지 않는다. 판결보다, 재판관이 중요하다. 그에게 물을 건낸다.
정체된다. 물러나지도, 나아가지도 않는다.
그래의 지각이 아니었다면, 상식이 감기에 들지 않았고, 어떻게든 결론이 났겠죠.
근데 두사람은 딱 저 정도에서 벗어날 수가 없네요.
'T > 아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우인혁 :: 흔한 애인 사이 (0) | 2015.03.18 |
---|---|
모브인혁 :: 출혈 (0) | 2015.03.09 |
그래상식 :: 뱀파이어 (2) | 2015.02.22 |
그래상식 :: 발렌타인데이 2015 (0) | 2015.02.15 |
그래상식 :: 베일 (0) | 2015.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