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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아재

그래상식 :: 중독자, 반복.

[내일 봅시다]






당신과 내가 헤어진지, 벌써 몇개월이 지났는지.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먹히기라도 한 듯, 나는 그 기간을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당신을 피해다니고, 끝내, 겨우 이직까지 하게되고. 하지만, 이 직장에 들어서서 당신의 입김이 내 이직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 지 또 알게되고. 나는 그걸 무마하려 또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당신을 생각할 그런 여지조차 두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또 다시 당신에게 달려가서 당신의 바지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릴테고, 당신은 또 나를 보며 한숨 짓겠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당신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내가 컴퓨터를 만질 때, 거래처를 만날 때, 발표준비를 할 때, 보고서를 작성할 때, 회식을 가서도. 당신의 목소리와 몸짓과 모든 당신의 생각이 나를 잠식했다.

그러면 나는 잠시 얼어 당신에 대해 생각하다, 겨우 당신의 생각을 멈췄다.

그 지옥에서 빠져 나오려고,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나는 또 당신의 생각을 하고 있다. 새로 들어온 인턴들의 뒷담화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면서, 내 상사가 하는 당신의 최근 이야기는 왜 넘기지 못할까. 스스로 초래한 야근을 하며 자조했다. 당신은 내가 가진 마음을 듣고는, 왜 자신이냐고 물었지만, 나도 의문이다. 왜 당신이었을까. 그 많은 사람들 중, 왜 당신이었을까.

당신이 새로운 거래처를 뚫는 데에 연거푸 고배를 마신다는, 그리 흔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기한 이야기도 아닌, 일상. 일상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가 왜 이렇게 신경쓰일까. 당신이 상심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부하들한테 내색하지 않으려는, 그 모습이. 그럼에도 열정적일 당신의 모습이.


가방을 챙겨 주섬주섬 일어났다. 누군가 잘못 쏘아낸 것처럼 나는 도심을 달렸다. 멀지 않은 곳에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시간까지 있을지 확답하지는 못했다. 그저, 당신을 향해 달렸다. 왜? 왤까. 나는 왜 당신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왜냐면, 당신이 착한 사람이라서.

입구에 서성거리자, 이제야 퇴근하는 전 직장 사람들 몇몇이 알아봤다. 내 소문이 좋게 처리된 것인지, 그들은 웃으며 나에게 인사해왔다. 나는 대충 인사하며, 당신이 있을 곳을 올려다 봤다. 그들 중 한사람이 말했다.

"아, 오차장님 찾아왔구나. 아직 계실텐데..."


내가 머뭇거릴 이유가 있을까. 단숨에 올라갔다. 자동으로 눌리는 손가락, 당신의 놀랄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당신은. 나를...

바라봐줄까.

나 혼자 사랑하고, 떠나가고, 그래도 당신을 다시 볼 수 있는 걸까. 도착하기 전, 그 당신이 있을 층의 아랫층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나는 비상구에 들어갔다. 계단에 주저 앉으며, 당신을 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상심해 있을 당신이 생각나서 왔다고 하면, 당신은 나를 밀어낼까.

조심스레, 계단을 올랐다. 당신의 얼굴을 잠시라도 본다면, 그런다면 만족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매번 상상하는 당신이, 실존해 건강히 살아가는 것만 볼 수 있다면. 삑삑거리는 문을 조심스레 열자, 내가 있을 때보다 빽빽히 들어찬 책상들이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자리에 당신이 있었다.

멀리 보이는 당신은,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고, 기침을 하고 있었다. 콜록이는 당신이, 혹여 감기라도 들었나 나도 모르게 다가가 당신의 어깨를 붙잡았다. 당신의 찡그린 눈이 나를 향하자, 나는 마치 금연을 하다 다시 담배를 피기라도 한 듯이, 척추부터 찌릿하고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무작정, 기침을 하던 당신의 입술을 찾았다. 밀어내는 손을 맞잡고, 당신의 입 안으로 혀를 들이밀었다. 당신은 내 혀를 마주했고, 숨을 멈췄다. 입을 떼고, 그대로 당신을 껴안아서야, 그제야 나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숨을 쉬었다.

"숨을 못 쉬겠어요. 다른 곳에선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죽을 것 같아요."

당신의 귓바퀴가 내 말소리에, 숨에 움찔거렸다. 맞잡은 손가락도. 당신이 앉은 의자가 조금씩 밀려났다. 빠지는 몸에, 의자에 무릎을 올리고 안은 몸을 풀어냈다. 당신은 내게서 고개를 돌린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야윈 몸이, 당신의 일상을 말해왔다.

"왜 이렇게 말랐어요? 들었어요. 거래처랑 잘 안됐다는 거. 그래도 밥은 늘 챙겨 드시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은 그제야 나를 바라본다. 조금 억울한 눈을 한 채로 마주한 눈은, 나를 응시하더니, 떨리고,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울 것 같은 건 저에요.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잠깐이라도, 먼저 나를 바라봤다는 것이 기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그거 때문 아니야."

고개를 내린채로, 당신은 내 시선을 비껴 이야기했다. 당신의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질이고, 뇌 속을 파고 들었다. 마주잡은 손이 따뜻하다 못해, 땀이 났다. 누구의 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요?"
"그냥... 그 전부터..."

더듬거리며 말하는 당신을 내려다 봤다. 당신은 나를 보고 왜 돌아왔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내심 그게 좋아서, 미소지은 채 당신의 마른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전이요?"
"니가..."
"제가?
"니가, 그냥 갔잖아."

마치, 당신을 생각하던 때처럼, 얼어붙었다. 소름이 끼쳤다. 꿈인가? 당신은 여전히 나와 마주치지 않는 눈으로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의 손은, 어느새 내 손을 마주잡아왔다.

"저 못 돌아와요."
"숨 못 쉰다면서."

이직한지 얼마나 됐다구요. 그리고 저 숨 못 쉬고 내일 찾아오면, 또 이렇게 안아주세요.


품 안의 당신은 웃었던 것 같다. 아닌가, 화를 냈었나? 됐다. 내가 웃자, 당신은 같이 소리내어 웃어 줬다.









원래 오상식이 그래 밀어내면서, 내일 보자고 말하게 하려 했는데....(새드엔딩)
전 늘 해피엔딩 성애자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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