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를 사랑한다. 신은 그의 뛰어난 제자를 대견스러워 할 뿐, 절대 시기하지 않는다. 그 제자가, 신이 될 수 없음이 너무나 명백하니까. 그러나 인간은 그의 뛰어난 제자를 시기한다. 동시에 대견스러워도 한다.
젊음이 부럽다고, 처음으로 느낀다. 그의 제자에게. 상식은 책상을 두드린다. 핑그르르하고 돌아가는 펜은, 이내 예고했듯 떨어져, 누군가의 발치를 건드린다. 그 누군가는 또 그 펜을 주워 상식에게 건낸다. 그러면 상식은 또 펜을 돌리고, 떨어진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야, 펜은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필통에 들어가서 눕는다.
상식은 그래의 눈을 보고 가로 젓는다. 그래의 고개가 떨어지고, 다시 상식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이건, 내 수준의 논문이 아니야. 우리 과 교수들 다 모아서 이야기 해봐야겠어."
그래의 고개가 올라오고, 상식은 즐거운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젓는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돌리고, 떨어지고. 그곳에 없는 가짜펜이 바닥에 떨어지지만, 아무도 줍지 않는다.
그의 강의는 유쾌하고, 유용하고, 가볍다. 그 가벼움 속엔 심지가 있다. 그 심지를 파면, 또 다른 심지가 있다. 반복되는, 심지 속, 맨 안쪽엔 열정이 있다. 긍지도 있다. 긍지는 부딪치지도 꺽이지도 않는다. 심지로 둘러 쌓여 똑바로 서있다.
그의 유쾌하고, 약간은 시니컬한 강의는 사람들이 몰린다. 수많은 학생들은 그를 좋아하지만, 다른 교수들은 가벼운 그를 싫어한다. 아니, 그 안의 열정을 싫어한다. 그것이 보이는 이들은.
그 안의 것들을 보는 이들은 따로 있다. 나이, 지혜, 그리고 경험.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
그리고 그 모두룰 뛰어 넘는 재능. 재능이 선사된 사람. 장그래다.
재능을 알아보는 눈은 어디서 얻을까. 재능, 잠재력, 꽃봉우리 혹은 그 이전의 상태에서 미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일 것이다. 교수들은 늘 몇몇이 제자를 둔다. 오랫동안 교육의 현장에서 기른, 길렀다 생각하는 눈으로 학생들을 보고, 의지를 가진 학생들 중에서도 재능을 엿봤다 생각이 드는 학생을 곁에 둔다. 그 중 성공한 이는 몇이나 될런지. 도중에 과정을 끝내지 못하는 학생들도 분명 있다.
그리고 오상식은, 자신의 통찰력에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장그래를 처음 봤던 순간부터, 그는 알아보았다. 그 뒤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지. 이상하게도, 처음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백명이 넘는 학부생 중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눈을 뗄 수 없었다.
장그래에겐 의지도 있었으나, 배경이 불안했다. 그래서 오상식은 학과장에게 사정사정해 장학금을 타게도 했다.
주변 교수들은 왜 그렇게 학부생 하나에 차별하나는 듯 혀를 찼다. 특히, 그의 안에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더욱. 왜냐면 그만큼 오상식이 뛰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장그래에게 빌다 싶이 해 대학원에 들어오게 한 것도, 오상식이었다. 원래 자신의 제자들도 있었기에, 그 과정 중에는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상식은 빛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결과는 모르지만, 그의 교육자로서의 피가 불탔다. 새빨갛게.
그리고 그의 학자로서의 긍지는 박살난다. 단, 3개월 만에. 그의 제자들은 장그래의 빛을, 그의 총애로 바라보는 멍청이들이었다. 상식은 장그래를 돌려 보낸 채,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쿵하고, 방이 울렸다. 상식은 부러웠다. 넘볼 수 없는 저 지혜가. 미미르의 우물에, 눈 하나로 될 것인가. 뇌를 제외히고 전부 바친다 하면 이런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상식은 고개를 젖혔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처음 알아본 것이 자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상식이 가진 이 자리에, 그래가 올라오는 것이 10년도 걸리지 않을꺼라 자부할 수 있었다. 10년이 무엇일까. 5년이면.
상식은 그래가 보낸 파일을 교수들 데이터베이스에 올림과 동시에 전체 메시지를 넣었다. 최단, 최고의 제자라며.
교수들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상식을 동정했다. 같은 분야에 이런 신성은, 언제나 화제였다. 그를 학회에 소개할 이는 오상식이었다. 장그래는 순식간에 학회의 이슈가 될 것이고, 오상식은 밀려날 것이 분명했다. 스승과, 제자. 순식간에 그 관계로 인한 몰락이 예견되었다.
상식은 그것을 알면서도, 그래의 논문을 발표시켰다. 학위는 물론이고, 더 높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 물을 갈구하는, 사막의 지식인이었다. 그래가 원하는 지식이란, 오상식이었다. 그의 눈을 뜨게 해준 것도, 이끌어 준 것도,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장그래가 끝임없이 달려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지식욕 보다는 오상식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의 축은 오상식이었다. 모든 바람은 그를 중심으로 불고, 모든 시선은 그를 향해 있다. 어찌할 수가 있을까. 오상식은 장그래를 무지에서 깨우친, 어미새였다. 각인, 장그래는 오상식에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강도는 점점 더, 더, 더, 깊어진다.
오상식은 질투를 하지만, 그것은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 지혜를 질투하고, 사고를 질투하지만, 그것을 빼앗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말의 긍지 탓이기도 하고, 그의 제자를 아끼기 때문이기도하다. 만약, 누군가 장그래를 모함한다면, 제일 먼저 화를 낼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그리고 장그래는, 오상식을 사랑한다. 유쾌하고, 열정적인 저 사람을 사랑한다. 장그래는, 오상식이 자신을 곁에 두었으면 하지만,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장그래가 공부한 목적은 오상식 때문이었으나, 정작 그의 곁에 있지 못한다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장그래는 오상식의 강의를 듣는다. 수업 내용을 따라가면서도, 오상식을 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다 돌아보는 그와 눈이 마주치지만, 두사람 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상식은, 5분만 쉬자며 급하게 강의실을 뛰쳐나간다. 그래는 그 뒤를 쫓아 갔다. 화장실에서 급하게 구토를 하고 있는 그가 있었다. 깨끗하지 않은 화장실일텐데도, 그 곳에 무릎과 다리를 대고 변기를 붙잡고 있었다.
그래는 묻고 싶다. 저란 존재가 역겨우십니까? 그러나, 돌아올 말이 무섭다. 그저 그의 등을 쓸어주고, 가방에서 물을 꺼낼 뿐. 장그래는 오상식의 한쪽 손이 계속해서 허공을 돌리고 있는 것을 그제야 눈치챈다. 이미 늦었다.
오상식은 장그래를 보낸다. 멀리멀리. 공항에서 나와 장그래가 탄 비행기가 그를, 오상식과 우연으로는 마주할 일이 없는 곳에 데려다 놓기를 기도한다. 그를 아끼지만, 동시에 무섭다. 그가 무엇을 어떻게 저에게 저지를 지가 무섭다. 눈이, 오상식은 장그래의 눈을 무서워한다. 그 눈은, 마치 상식을 잡아먹을 그런 열정이 들어 있다. 그렇기에, 장그래는 미미르의 우물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미, 맹목적이기에.
미미르의 우물은 북유럽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우물입니다. 오딘은 그 우물에 눈을 바치고 커다란 지혜를 얻었죠.
사실 이 교수소재를 다른 곳에서 따온 것이라, 문제되면 글은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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