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하는 목소리 페티쉬 장그래와
그걸 막으려는 오상식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를 들어주세요.
1. 너의 목소리가 들려
골목 골목을 돌아,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언제나 외롭고 쓸쓸하다. 가로등이 켜져 있고 혹은 꺼져있고,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조금만 옆으로 가면 네온사인에, 귀가 떨어질 것 같은 말소리와 음악 소리로 가득한 동네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진정한 적막. 자신의 발소리만 거리를 울리고,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이 적막 속에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휴대폰에서 도청 앱을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가쁜 숨이 내 폐에서 빠져나갔다. 지금 내 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는, 내게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다. 골목을 차지한 계단 하나하나를 올라감에도 흥분이 담겨 있었다.
약간은 안 좋은 음질에, 다음엔 가방에 붙이지 말고 양복 상의에 도청기를 붙여야 하나 하고 고민하며, 좁은 길목을 타고 올라갔다. 작은 상가가 있는 큰길을 피하자, 그제야 선명하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이어폰을 귀 안쪽으로 더 눌러 넣었다. 회사 사람들과 헤어져, 이제야 차를 타고 가시려는 모양이었다.
차장님은 차에서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만을 듣기 좋은 기회였고, 혹시라도 라디오를 켤까 봐 저번 주에 미리 차에 있는 라디오를 고장 내고, 음악 플레이어도 막아둔 상태였다. 하지만, 어제부터 그는 혼잣말을 비롯해, 회사 밖에서는 말 자체를 잘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되는 침묵에 네트워크 문제인 줄 알다가 정차하는 차 소리에 그제야 진정할 수 있었다.
집 문이 열리는 소리와 아이들의 반응하는 차장님에, 나는 다시 상기되는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어차피, 여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집으로 바로 가는 지름길을 피해, 좀 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골목을 골라 갔다. 차장님 아내 분의 목소리가 들리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는지 그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웠다 했다. 나는 골목에 약간 튀어나온 담벼락에 기대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가 내뱉는 단어를 하나하나 음미했고, 핥아 올렸다. 꿈과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귀를 찢는 노이즈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놀라서 황급히 이어폰을 뺐지만, 그 안에서 들리는 건 이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2.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 데도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던 중, 현관에 놓인 가방에, 까만 점 같은 걸 발견했다. 전에도 봤던 것이었기에, 나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에 그걸 부셔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아이들이 뭐냐고 매달려 오길래, 벌레가 붙어 있었다며 매미 흉내를 내자, 아이들이 또 까르륵하고 웃는 게 귀여워 막내를 잡으러 거실을 뛰어다니다가 아내한테 밑에서 올라온다고 등짝을 맞았다.
어제, 집에 가는 길에 시계 안쪽에 붙어 있던 까만 점 같은 걸 찾았다. 전에 본 수사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걸 본 기억이 있어서, 필사적으로 떠올리자, 그건 도청기였다. 나는 그걸 떼내어 부술까 말까 하다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붙이고 말조심을 하고 있었다. 기업 스파인가 싶어, 다음날 회사에 제일 빨리 와 시계를 풀어놓고 어쩔까 하며 화장실에 갔다 오자, 시계는 그대로고 도청기만 없어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같은 회사 사람들만 차례차례 출근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오고 난 후 바로 들어온 장그래가 내 자리 옆에서 파일을 정리하고 있길래, 누가 내 자리에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자기는 아무도 못 봤단다.
그렇게 하루종일 주변을 살피느라, 그 날 하루는 업무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동식이한테 몸이라도 안 좋으시냐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고, 퇴근 한 시간 전에, 포기하고 담배를 피우고 오자 장그래가 다른 데 보낼 서류를 검토해 달라고 내 자리 옆에 서 있었다. 그 서류에 오타가 난 곳을 고쳐 놓고, 시계를 보자 벌써 퇴근 시간이었다. 혹시 퇴근길에 접근해서 도청기를 붙일까 싶어 애들을 먼저 다 퇴근시키고 한참이 지나서야 회사를 나왔다. 야근하는 다른 부서 애들한테 인사를 하고 차에 오르자, 안심되었다.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라, 여전히 말조심을 한 채 집까지 가는 길에 또 몸수색을 했지만, 도청기는 찾을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자, 진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새벽에 물을 마시러 나와 쓰레기통에 버려진 도청기 잔해를 보다 그 쓰레기통에 씌워진 비닐을 벗겨 매듭을 지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파카를 하나 걸치고 쓰레기장에 분리수거고 뭐고 봉투를 던져 넣었다. 집으로 올라오자,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물론, 다음날 와이셔츠 소매 단추 안쪽에 달린 까만 점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캐붕 같은데
그걸 막으려는 오상식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를 들어주세요.
1. 너의 목소리가 들려
골목 골목을 돌아,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언제나 외롭고 쓸쓸하다. 가로등이 켜져 있고 혹은 꺼져있고,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조금만 옆으로 가면 네온사인에, 귀가 떨어질 것 같은 말소리와 음악 소리로 가득한 동네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진정한 적막. 자신의 발소리만 거리를 울리고,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이 적막 속에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휴대폰에서 도청 앱을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가쁜 숨이 내 폐에서 빠져나갔다. 지금 내 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는, 내게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다. 골목을 차지한 계단 하나하나를 올라감에도 흥분이 담겨 있었다.
약간은 안 좋은 음질에, 다음엔 가방에 붙이지 말고 양복 상의에 도청기를 붙여야 하나 하고 고민하며, 좁은 길목을 타고 올라갔다. 작은 상가가 있는 큰길을 피하자, 그제야 선명하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이어폰을 귀 안쪽으로 더 눌러 넣었다. 회사 사람들과 헤어져, 이제야 차를 타고 가시려는 모양이었다.
차장님은 차에서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만을 듣기 좋은 기회였고, 혹시라도 라디오를 켤까 봐 저번 주에 미리 차에 있는 라디오를 고장 내고, 음악 플레이어도 막아둔 상태였다. 하지만, 어제부터 그는 혼잣말을 비롯해, 회사 밖에서는 말 자체를 잘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되는 침묵에 네트워크 문제인 줄 알다가 정차하는 차 소리에 그제야 진정할 수 있었다.
집 문이 열리는 소리와 아이들의 반응하는 차장님에, 나는 다시 상기되는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어차피, 여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집으로 바로 가는 지름길을 피해, 좀 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골목을 골라 갔다. 차장님 아내 분의 목소리가 들리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는지 그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웠다 했다. 나는 골목에 약간 튀어나온 담벼락에 기대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가 내뱉는 단어를 하나하나 음미했고, 핥아 올렸다. 꿈과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귀를 찢는 노이즈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놀라서 황급히 이어폰을 뺐지만, 그 안에서 들리는 건 이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2.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 데도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던 중, 현관에 놓인 가방에, 까만 점 같은 걸 발견했다. 전에도 봤던 것이었기에, 나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에 그걸 부셔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아이들이 뭐냐고 매달려 오길래, 벌레가 붙어 있었다며 매미 흉내를 내자, 아이들이 또 까르륵하고 웃는 게 귀여워 막내를 잡으러 거실을 뛰어다니다가 아내한테 밑에서 올라온다고 등짝을 맞았다.
어제, 집에 가는 길에 시계 안쪽에 붙어 있던 까만 점 같은 걸 찾았다. 전에 본 수사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걸 본 기억이 있어서, 필사적으로 떠올리자, 그건 도청기였다. 나는 그걸 떼내어 부술까 말까 하다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붙이고 말조심을 하고 있었다. 기업 스파인가 싶어, 다음날 회사에 제일 빨리 와 시계를 풀어놓고 어쩔까 하며 화장실에 갔다 오자, 시계는 그대로고 도청기만 없어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같은 회사 사람들만 차례차례 출근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오고 난 후 바로 들어온 장그래가 내 자리 옆에서 파일을 정리하고 있길래, 누가 내 자리에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자기는 아무도 못 봤단다.
그렇게 하루종일 주변을 살피느라, 그 날 하루는 업무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동식이한테 몸이라도 안 좋으시냐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고, 퇴근 한 시간 전에, 포기하고 담배를 피우고 오자 장그래가 다른 데 보낼 서류를 검토해 달라고 내 자리 옆에 서 있었다. 그 서류에 오타가 난 곳을 고쳐 놓고, 시계를 보자 벌써 퇴근 시간이었다. 혹시 퇴근길에 접근해서 도청기를 붙일까 싶어 애들을 먼저 다 퇴근시키고 한참이 지나서야 회사를 나왔다. 야근하는 다른 부서 애들한테 인사를 하고 차에 오르자, 안심되었다.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라, 여전히 말조심을 한 채 집까지 가는 길에 또 몸수색을 했지만, 도청기는 찾을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자, 진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새벽에 물을 마시러 나와 쓰레기통에 버려진 도청기 잔해를 보다 그 쓰레기통에 씌워진 비닐을 벗겨 매듭을 지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파카를 하나 걸치고 쓰레기장에 분리수거고 뭐고 봉투를 던져 넣었다. 집으로 올라오자,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물론, 다음날 와이셔츠 소매 단추 안쪽에 달린 까만 점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캐붕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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