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맞는 주말에, 나는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이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시끌시끌했을 집이 이시간까지 조용할리가 없었기에 팬티차림으로 거실로 나오자, 주방도, 티비 앞도, 아이들 방에도 사람이라곤 보이지도 않았다. 배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쨍한게, 오히려 사람들의 빈자리를 부각 시켰다.
일단 쇼파에 올라가 티비를 틀어 놓고 생각해 보니, 어제 장그래랑 둘이 야근까지 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아내가 애들이랑 친정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었지만. 설마 날 두고 갔을 꺼라곤. 너무 피곤해 하니 두고 간건가, 하고 아내의 배려에 고맙기도 하면서, 동시에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찝찝한 마음으로 좋은 날씨에 티비나 보고 있으려니, 또 다시 잠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른하고, 잠이 드는... 그런, 순서를... 잠이...
순간 울리는 소리는, 내 휴대폰 소리였다. 단발성으로 울리는 건, 분명 문자메시지. 어제 입은 양복상의 안에 있을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 탓에, 잠에서 깬 나는 쇼파 위에 있는 쿠션을 끌어 안고 안방으로 향했다. 아내가 정리해 놓은 건지, 어제 분명 아무데나 벗어놓은 옷이, 옷장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안 주머니를 뒤져 나온 휴대폰을 열자, 문자는 장그래 한테서 온 것이었다.
"에이, 난 또 누구라고."
내심 아내이길 기대했던 자신을 책하곤 다시 폰과 쿠션을 끌어안고 쇼파에 앉으니, 다시 휴대폰에서 작은 진동과 함께 소리가 울렸다. 자기 혼자 돌아가는 티비 앞에서 그 작은 액정을 들여다 보니,
[차장님, 지금 댁이세요?
혹시 괜찮으시면 잠깐
나오실수 있으세요?]
이게 내 잠을 깨운 원인이었고,
[안되시면 잠깐 내려라도
오시면 안될까요?
지금 차장님 댁 밑에 있습니다.]
이게 방금 온 문자였다.
나는 일단, 손에 집히는 대로 바지와 잠바를 껴입곤 집 밖을 나섰다. 잔뜩 뻗은 머리를 손으로 대충 훑고는 아파트 입구에 서는데, 거기에 장그래가 서있었다.
"장그래,무슨 일인데 집까지 오고 그래? 급한거야?"
"야뇨, 그게..."
말끝을 흐리는 장그래는 편안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손에 들린 비닐봉지도 그렇고.
입구에서 뭐라 하는 것도 이상해서 일단 장그래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와본적 있어서 그런지, 자기가 먼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나를 보는 게 상당히 익숙해 보였다. 무슨 일인지 몇일 전부터, 끼익하는 소리가 나는 엘리베이터는, 조금 느리게, 육중한 몸을 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아까부터 묻고 있지만, 장그래는 별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급한 일도 없는 것 같고, 나도 굳이 대답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장그래의 비닐봉지가, 챙강 챙강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익숙한 소리였고, 의아해지기도 했다.
특유의 베시시 웃으며, 비닐봉지를 티비 앞 상에 올린 장그래는 그 안에서 몇병의 술과, 마른 안주를 꺼내었다. 몇일 계속 야근에, 시달렸던 우리 둘은, 꽤나 오랫동안 같이 술을 한 적도 없었기에 나는 좋다 싶어, 냉장고에서 안주 될만한 것들과 컵을 꺼내 왔다. 아직 해가 쨍쨍했지만, 병따개가 내는 시원한 소리에 그런건 별 상관 없었다. 여전히 티비는 혼자 돌아갔지만, 우리 둘중 그걸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장그래 어떻게 집에 아무도 없는 지 알았어?"
술이 꽤 들어갔는지 얼굴이 발그스레해진 그가 한 쪽팔을 베고 나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어제 업무 본 것 중에 오류난 자료가 있었는데, 그걸 차장님이 가지고 계신가하고 아침에 연락 드렸는데 사모님이 받으셨어요."
그가 베고 있는 팔이 내 쪽으로 넘어와 있기에, 그가 눈치챌까 궁금해하며 그 손에 내 손을 얹었다. 별 반응없이, 계속 하라는 듯이 그는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사모님이 차장님 피곤해서 못 일어나고 계신다면서, 집 비는데 찾아와서 이야기해도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사실 다 핑계에 지나지 않았지만, 찾아온 기회를 놓치는 멍청이는 되고 싶지 않았다. 지퍼를 내린 트레이닝복 안에 런닝을 입어 비치는 살이 좀 민망해서 고개를 내리자, 잡힌것도 아닌 얹여진 손이 움찔거렸다.
평소의 주사와 달리, 상에 엎드려 잠이 든 그를 바로 뒤 쇼파에 눕혀 놓고 요를 찾아 오려는데 아까 맞물려 있던 손이 어느새 잡혀 있었다. 혹시 자는데 깨울까 싶어 쇼파 밑에 앉아, 겨우 옆에서 찾은 얇은 담요를 그의 위로 덮었다. 석양이 짧게 들어와, 내 발을 데우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선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쇼파에 몸을 기댄채 그를 보고 있었다.
한시간쯤 지나서 잠에서 깬건지, 그는 살며시 눈을 떠 내 눈과 시선이 맞았다.
"우리 오류난 자료 같은거 없잖아."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자다 일어나 쉰 목소리로.
"네, 그렇죠."
나도 그랬다.
어려운데 재밌네요. noel gallager's HFB의 Come on outside 들었는데 왜 집 안으로 끌여들이게 되었나...음
외로운 오상식이 장그래 짝사랑에 조금씩 젖어가는 느낌으로 연성했습니다ㅋㅋ 망한듯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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