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연기를 상대방의 얼굴에 내뿜는 행위는 오늘밤 당신을 가지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아침은 빛나고, 아름다워 보였다. 밤 뒤에 온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새로 떠오르는 햇빛과 그제야 모습을 보이는 구름이 떠올라 직각으로 세상을 비추는 그 광경이 아름다워서 나는 잠도 잊은 채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낮의 강한 햇빛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두터운 모직커튼을 틈새 마다 꼼꼼하게 끼워 넣고, 침대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이불을 둘둘 맨 상태로 웅크려 자고 있는 그가 있었다. 시계를 힐끗보곤, 다시 얼굴이나 볼까 하고 옆자리에 조심스레 누우니, 깨어 있는 것인지, 아닌지, 그는 몸을 뒤로 빼었다. 어차피 침대에서 멀리 가지도 못하는 이불뭉치를 가만히 보고 있자, 이윽고 머리 부분이 움찔하더니 손가락들이 보였다. 그게 또 그렇게 귀여워 보여서, 그 꼬물거리는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가져다 대니 가만히 있다가, 손가락들은 다시 안으로 숨어 버렸다. 그걸 보고 가볍게 웃자, 이불뭉치가 또 뒤로 물러나다가 그만, 침대를 벗어나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에게선 언제나 담배냄새가 났다. 금연 중인 그에게 그 냄새가 날리 없었지만, 그는 언제나 담배를 피는 시간을 가졌다. 무슨 일인가 뒤따라가 보면 그는 늘 담배를 물고 있었다. 단지, 물고만.
그의 주머니엔 라이터가 없었다. 오히려 라이터는 비흡연자인 내가 가지고 있었다. 자주 집에 형광등이 나가거나 하는 바람에, 초를 켤때 필요한 라이터는 습관처럼 내 가방이나 안주머니 속에 들어있곤 했다.
옆에 나란히 옥상 난간에 기대 그의 옆얼굴을 그리고 있자, 그가 나를 바라본다. 바라보곤 말한다.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말을.
"야, 장그래. 라이터있냐?"
나는 그에게 라이터를 주지 않고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충혈된 눈, 뻗힌 머리, 거친 얼굴. 언제나와 같이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와이셔츠였다. 평소와 달리 잔뜩 구겨진 셔츠는 그의 곁에 있어야할 이의 부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재. 얼마나 즐거운 말인지. 영원한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는 알지 못하여도, 그것이 꽤나 심각하단 건 그의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의지가 강한 사람이, 일년 넘게 참아온 담배를 피려하다니. 아이러니 히게도, 여전히 그것이 내게 즐거운 소식임에는 틀림 없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를 뺏어 물었다. 안주머니를 뒤지자 가스가 거의 다 된 형광녹색의 라이터가 손에 걸렸다. 익숙하게 그걸로 담배에 불을 붙이자, 그의 황당한 얼굴이 담배연기 사이로 보인다. 오늘따라 불지 않는 바람은 그와 나 사이의 연기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었다. 깊게 들이쉬자, 니코틴이 척추부터 오랜만에 반갑다는 듯이 올라왔다.
"너 담배도 폈었어?"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보던 그는 내 손가락 사이에 있던 담배를 빼, 땅에 던지곤 비벼껐다. 난 잠깐 입에 닿은 순간 빨아들인 매캐한 연기를 그에게로 불었다. 여전히 빌딩 벽들로 둘러 쌓여 바람 한점 없는 공기는 여과없이 내 뜻을 전달해 주었다. 방심하다 연기를 마신건지, 그는 코를 붙잡고 기침을 하고 있었다. 별로 길지 않아 그의 기침은 멈췄지만, 안 그래도 빨간 눈이 젖어 있는 걸 보니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 젖은 눈이 의도치않게 나를 더 부추기는 것이었다.
차장님은 꿈에도 모르시겠지만, 그건 나름의 선전포고였다. 빈자리를 노리는 선전포고. 아니, 꿈에도 모르시진 않으실것이다. 어찌되었건 우린 같은 자리에 누워있고, 팔베게를 하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있으며.
나는 좀 더 빨리 일어나서 그의 와이셔츠를 다려놓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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