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날조주의
성당에서 챙기는 그 많은 행사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오늘은 그 중 가장 크다해도 거짓이 아닐, 성탄절의 전야였다.
제가 갈께요, 신부님! 가겠다고요! 온 기운을 짜내어 소릴 지르며 교정을 걷는 아가토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선을 대신해서 제일 큰 강당에서 성가가 울려퍼졌다. 달은 아가토를 따라다니며, 그의 검은 그림자를 옅게 만들었다. 그의 어둠을 가져가려는 듯이, 그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그러나 아가토는 누군갈 닮은 그 빛을 무시하고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런 날 외출을 해야겠냐. 핀잔을 주는 학장신부에게 아가토는 평소와 다르게 빌기만 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늘 당당해 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인지, 잘못을 했을 때처럼 비위를 맞추려드는 아가토에 신부는 그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급하게 부르시는데 제가 어쩌겠습니까, 학장신부님. 예? 안되겠습니까? 내심 아가토를 처음 내보냈던, 그 구마가 있은 후부터 그들을 인정하기 시작한 그는 아가토의 끈질긴 목소리에 결국 손을 내저었다. 그래, 가라. 가. 이렇게 또 성가대 빼먹고 말이야. 너란 놈은 정말 변하질 않는다.
그게 제 매력 아니겠습니까. 씩 웃는 아가토를 볼때마다 학장신부는 그가 성직자로 있기엔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 학장신부는 쓰게 웃곤 그에게 삐뚤거리는 김범신이란 싸인 밑에 자신의 도장을 찍으며 허가를 내줬다. 지옥으로 잘 갔다 오거라, 최준호 아가토.
대림절 동안, 네개의 초가 켜질 성탄절 바로 전 주까지 아가토는 그의 지도사제와 매일 같이 전화를 해댔다. 늘 침대에 들어가 그의 목소리를 듣는 아가토는, 그의 신부보다 늘 일찍 잠들었다. 휴대폰을 쥐고 잠든 아가토의 귀에 대고 그의 신부는 꼬박꼬박 잘자란 인사를 하곤 했다. 그가 깰지도 몰라, 속삭이듯이. 다음날 아가토가 깨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의 휴대폰을 충전하는 것이었다. 그의 밤을 위해서, 그리고 그의 사제를 위해서. 두사람의 평온할 밤을 위해서.
그런 다행스런 날들이 이어졌으나, 일주일 전, 아가토는 그와 성탄절 계획을 잡았다. 이전에도 그에게 학교에 와서 같이 보내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아가토의 제안에 그는, 내가 거길 왜 가냐. 됐다. 너 혼자 시끌벅적하게 즐겨라. 아가토는 지지 않고, 그런 시끄러운 건 자기도 싫어한다고 말했으나, 그의 소중한 이는 그를 거부했다. 아가토는 그의 누추한 방으로 자신이 가겠다고 말했다. 베드로는 한숨을 쉬더니 전화를 끊었다. 대림절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그가 아가토의 수면을 바라보지 않은 날이었다.
그날 밤 아가토는 죽을 듯이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아무도 오지 않을 밤을, 혼자 맞이한 밤 속에서 아가토는 작디 작은 하나의 미물로서 그 거대한 밤에 맞서 싸워야 했다. 손을 잡아주는 이 하나 없이, 아가토는 그곳에 밀려 밑바닥까지 보고야 말았다. 자신에게 김범신 베드로가 없는 삶이란 어떠한 것인지에 관해 알게된 아가토는 오히려 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고통을 베드로도 봐야한다는 유치하고 인내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에게서 먼저 버티지 못하고 자신에게 전화를 걸 것이 분명하다는, 자신감.
첫번째 밤을 지나서, 두번째 밤을 맞이하자 아가토는 겁이나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하다 아가토는 휴대폰을 옷장 깊숙히 넣어버렸다. 결국 스탠드를 켜, 공부를 시작한 아가토를 아무도 바라바주지 않았다. 당직을 돌고 있을 신부 조차 불빛이 새어나올 그의 기숙사방을 두들겨주지 못했다. 아가토는 아무것도 펴지 못하고 스탠드를 껐다. 문뜩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창문을 열어 아래를 바라봤다. 자신이 늘 타넘던 담장, 건물의 아래에도 쥐새끼 한마리도 없었다. 아가토는 창을 닫고 옷장을 열었다. 옷을 헤집어, 맨 안쪽에 있는 휴대폰을 쥐고 액정을 보았으나 그곳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아가토는 두번째 밤을 결코 오지 않을 그의 신부를 찾는 데에 사용했다.
베드로가 없는 세번째 밤, 네번째 밤, 다섯번 째 밤이지나고 성탄절의 전야가 재림했다. 매년 맞는 날임에도, 들떠서 움직이는 이들에게서 아가토는 붕 뜬채 그들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을 각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신경은 그가 쥐고 있는 휴대폰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 다른 어떠한 것에 사용할 수 있지가 못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누굴 쉽사리 비추지 않았다. 우연히 학장신부와 마주친 아가토는 그로부터 빨리 나가서 베드로 신부를 뵈어란 소리만 들었다. 아가토는 베드로 신부란 말이 나왔을 때만 움찔거렸을 뿐, 대답도 없이 그의 기숙사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그의 휴대폰을 켰을 때, 아가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낮이 짧아진 겨울은 늦은 시각도 아니었지만 칠흑은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만 수단을 걸친 아가토를 지키는 것은 목에 걸린 하얀 로만칼라였다. 아가토는 성을 내며 그의 사제와 전화를 해댔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가토의 자존심은 무너져 내렸다. 일주일 간의 설움이 수화기 넘어로 전해지길 기도하며, 아가토는 그럴 기운도 없으면서 베드로에게 악을 질렀다. 베드로는 오지 말란 건조한 말만을 이을 뿐, 그에 화답하지 않았다. 베드로의 일주일에 대해, 아가토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과 비슷한 하루들이 아니었을까 하고 막연히 떠올릴 뿐.
결국 아가토는 목도리를 한 채로 학교를 나섰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를 울리며, 아가토의 길을 밝혔다. 그의 뒤로 달이 쫓아오고, 그가 자신을 향해 오는 길에 모든 영광이 있기를 비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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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치 않아진 악몽 사이로, 베드로는 아가토를 보았다. 아가토가 자신을 향해 달려와 자신을 구해내는 꿈이었다. 베드로는 잠이 든 그대로 일어나 담배를 손에 쥐었다. 일주일 전 무식하게 끊어버린 전화 이후로, 베드로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아 버렸다. 그에게서 악몽은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가토와 전화하며 그에게나 자신에게나 나쁜 짓을 하고 말았다. 우리와 같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가면 안된다. 성탄절 이야기를 하는 아가토는 평소와 달리 너무나 들떠 있었다. 그제야 쏴하고 열기가 씻겨내려갔다. 아가토는 자신에게 기대면 안되었고, 자신 또한 아가토를 이용해서는 안되었다. 이 악몽들은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이었다. 누군가에게 참회를 빌지 못하는, 구마사제들의 속죄.
여관방 문이 덜컹거렸지만, 베드로는 문을 열어주지 못했다. 바람에 새빨개져 있을 아가토가 문 넘어 선명하게 보였으나, 그는 차가울 문고리를 당겨주지 못했다. 그를 껴안아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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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불면증이 아니라 악몽인 것 같은..큼큼... 전력으로 썼습니다. [불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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