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고 가라.
...예.
짧게도 스치지 못한 시선이 다시 엇갈려 흘러가듯 서로를 엿보았다. 떨어져 나간 손에 몸은 더 가벼워야만 하는데, 오히려 발걸음은 더 느려지기만 하였고 심지어 전송하려 들어 올린 팔과 손도 마치 쇳덩이와 같이 삐걱거리게 움직였다. 익숙하게 표정을 가렸다 생각하지만, 평소와 달리 자신이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몰라, 붉은 눈가를 누르며, 언뜻 본 얼굴을 곱씹어 누구도 보지 못할 탄식을 뱉었다.
/
신부님, 김 신부님.
두 번 안 불러도, 아직 귀 인멀었다.
...바로 김 신부님이라 부르긴 어색하잖습니까.
유연치 못하게 받아친 말이 오히려 도리어 내 등을 찔렀다. 그야 그렇지. 하며 돌아서는 당신에는 내 말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입었으나, 그런데도 나는 당신의 뒤를 쫓았다. 이 옆에 있을수록 더 큰 고통이 뒤따를 게 분명한데도 당신은 치즈 달린 쥐덫처럼 나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다치고 지쳐도 당신은 토끼라도 모는 양 느긋하게 내가 다시 당신을 쫓아가게끔 했다.
지극한 동정의 증표들과 옹졸한 내 감정이 맞부딪치면, 내 자존심과 같은 지극히 별 필요치 못한 것들은 너무나도 쉽게 그의 발밑에 무너져 내렸다. 그런 내가 어리고, 그래 어리석어 보였는지 당신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안배를 해 둔 경우가 꽤 있었고 이는 앞서 내가 말한 내가 지쳐 다리로 당신을 쫓아가는 이유였다.
내미는 술잔을 사양 없이 받으며, 벌 건 그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취했는지 고정되지 못한 시선 따라 마주 움직였다가 돌아보면 그와 몇 번이고 눈이 맞을 때도 있었다. 그걸 먼저 피하는 건 언제나 제 몫으로, 나는 얼굴로 쏠리는 열기를 술 탓으로 넘기기 위해 다시 술잔을 털어 넣었다. 꽂히는 눈은, 언젠가는 제 맘을 알아챌까. 제가 먼저 그를 바라보면 그는 한결같이 그 나와 같이 붉은 얼굴을 외면했다. 그 모습이 꼭 수줍은 미망인처럼 보여 그를 향해 뻗고 싶은 손을 참은 게 몇 번인지.
/
그래, 거기. 나도 안다 개새끼야. 어 좀 마셨는데. 니가 내 마누라냐, 그만해라. 그래, 부탁한다. 어.
이전에 보았던 박수무당인 듯했다. 그의 팔을 붙들고 나는 마치 없는 사람인 양 그를 이끌어 길을 건넜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전화를 끊은 그와 마주해, 덮쳐드는 침묵을 견뎠다. 나는 더운 숨을 빠듯하게 넘기며, 그 팔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무시하려 했다. 술기운에, 그의 체온에 녹아가는 정신을 다잡으려 노력하다 보니 눈 앞엔 빨간 네온 간판이 반쯤 떨어져 그의 얼굴을 비치고 있었다. 그는 내게서 팔을 빼어 나를 지나쳐 들어가려 했다.
그 네온이 그의 뺨을 물들여 놓지만 않았더라면, 결코 그를 붙잡지 않았을 터였다. 내게 당겨져 어깨부터 나를 돌아보는 그의 뺨은 여전히 붉었다. 다행이다. 나는 입 밖으로 뱉었는지 혹은 그러지 않았는지 모를 말로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이라도 나와 같아서 다행이다.
놓고 가라.
...예.
더운 숨 뱉으며 손을 내렸다. 그가 짧게 손을 흔드는 인사가 내가 평생 지닐 하나의 업일 터였다. 그 작은 행동이 나를 붙잡았고, 가끔 보이는 홧홧한 얼굴들이 나를 메어 누고, 나는 어리광을 그만둔 채 그 작은 지표를 판별하려 노력했다.
내 사사론 감정을 그에 투영하여 바라보기에 그가 얼굴을 붉히는 게 마치 부끄러워서 그러한 것 같은지. 그가 나에게 이끌려 가는 끝에 그의 얼굴이 터질 듯 붉었던 건 단지 네온 불빛 때문이었는지.
혹은 나와 같은 이유였기 때문인지.
-
짝님 리퀘 쌍방짝사랑하는 최김이 견디어가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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