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키는 공기가 매서웠다. 분명 어제만 해도 따뜻하던 공기는 하룻밤 비를 맞더니, 다시 쌀쌀한 여인이 되어 내 싸대기를 때린다던가, 온 몸을 애무하고 있었다. 아, 하지만 이 날씨보다 내 화를 돋우는 것은 장그래였으므로, 나는 점잖게 옷을 여몄다. 장그래, 장그래. 왔다갔다 하는 날씨만큼, 나를 혼란스럽게만 하는 이름. 너를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 두고 싶다. 마치 네가 나에게 한 짓처럼. 장그래, 그래야. 네 이름을 계속해서 입 안에서 굴리자, 어느새 네 이름은 두께도 가지고, 맛도 가졌다. 그걸 씹어먹으며, 네가 있는 카페 안을 스쳐 바라봤다. 분명 너는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너를 보고 있었다. 맞은 편의 사람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으나, 네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다 그 맞은 편 여자와도 눈이 맞았다. 처음보는 얼굴.
소개팅이었을 것이다. 홀로 집에 들어와 소파에 늘어진 장그래의 옷가지를 바라보았다. 네가 마음대로 가져온 옷가지, 잠옷, 정장. 아니, 되었다. 그러나 내 옷을 옷걸이에 걸며 속을 끓였다. 마음대로 하라 말은 했으나, 이리 나올줄은 몰랐다고. 그렇게만 말하면 될 일이 아니었다. 장그래, 장그래. 제기랄. 빌어먹을. 많지 않은 어휘에 너에 대한 감정을 실었으나, 그것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음은 당연했다. 상대가 없는 공허한 말이 허공을 한바퀴 돌더니, 다시 내 귀로 들어왔다. 제기랄, 빌어먹을. 장그래.
씨발, 오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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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는 또 다시 달콤하다. 지극히, 달아서 나는 그 말에 넘어가고 말 뻔하였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워온거야? 그 여자한테서? 나는 내 손을 붙잡는 네 손을 뿌리치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밤 늦게 들어온 장그래에게선 낯선 냄새가 났고, 그 냄새가 나를 유지시킬 수 있게 해줬다. 아, 나는 이미 장그래를 보기만 해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트리거가 있음에, 나는 다시 폭발한다. 내 욕설과 짜증을 장그래, 너는 무료히 보다가 다시 내 손을 이끌어 침대로 눕힌다. 이번에는 거부할 수 없다.
사랑해, 사랑해야 해. 사랑? 나는 멍히 천장을 보다 너의 목에, 내가 새기지 않은 자국을 본다.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는 흔들리는 몸에 의해 잘게, 아주 잘게 부서져간다. 아, 그래. 섹스는 사랑이다. 네가 초기에 내게 말하던 것이다. 차장님을 사랑해요. 섹스는 사랑해서 하는 거에요. 너는 그 여자도 사랑하는 것일까. 네 좆이 다른 구멍에도 끼여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구역질이 났다. 너는 참 사랑할 사람이 많아서 좋겠구나. 나는 한 사람만으로도 이리, 이렇게나 벅찬데. 나를 부셔가는 너를 뿌리치고 욕실로 향했다. 잠긴 문을 두고, 그 옆에 주저 앉았다. 이럼에도 너를 사랑할 내가 한심스러웠다. 불투명한 유리 위로 너의 그림자가 어렸다. 잠긴 문을 두들기다, 부셔버리겠다는 너답지 않은 다급한 말투로 내게 말한다. 나는 그걸 바라보다, 네가 왜 그렇게 급한지 알게되었다. 찬장에, 면도기가 있었다.
그걸 들지는 않았으나, 문은 열지 않았다. 단지 물을 틀어, 그 안에 들어갔다. 너의 두들김은 더욱 심해지고 정말 문이 부셔지지 않을 까 싶을 정도나 되어서야, 열쇠를 따고 네가 들어와 나를 봤다. 너는 내 머리채를 붙잡았다. 네 체격보다, 내 체격이 더 크다는 것은 아는지. 나는 너의 손에서 빠져나왔고 그러자 마자 너는 내게 화를 냈다.
시작은 너였을 지 모르나, 나는 마치 너처럼 그 말을 무료히 듣고 있었다. 저 말들이 내게 어떠한 상처도 되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은 아니었다. 그 사이 장그래는 늦게 들어오고, 나는 그런 너를 쫓아 나가거나, 화를 냈다. 그러나 마지막은 늘 섹스를 했다. 그 감각이,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감각이 좋아서.
나는 분명 너에게 중독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너의 독점을 바랄 수 있을까. 나는, 장그래야. 너에게 평생 벗어나지 못할 몸이었다. 그런 내가 너의 섹스를 버리고 뛰쳐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장그래. 너무 많이 나갔다. 나는 화를 내는 너의 목덜미에 있는 누군지 모를 사람이 남긴 키스마크를 눌렀다. 장그래, 빌어먹을. 나는 작게 중얼대고 너를 무시했다. 침대에 눕자, 방금까지 정사가 있었던 곳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트는 차가웠음은 물론이고 심하게 까칠거렸다.
눈을 감은 사이, 네가 욕실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볼 수 있으면 봤으면 좋겠다. 네가 어디까지 갔는지, 초과했다는 것을. 장그래. 그래야. 나는 더이상 인내심이 없다. 당장이라도 네 뒷덜미를 붙잡고 멀리멀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싶은 마음 반, 그냥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 반. 욕실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향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돌아누웠지만, 벗은 어깨를 붙잡아오는 손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내가 너를 떠날 수가 있을리가 없다. 아무 말 없이 내 품 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너를, 껴안았다. 너 나름의 사죄였을 것이다. 그리 여기고 나는 또 다시 너에게 지고 만다.
얀데레 오상식 이야기하던거 생각나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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