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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아재

민우인혁 :: 허전한 마음






네가 있어야할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느낌은 요상했다. 그 다른사람에게 무심코 너에게 물을 질문을 한다던가, 너는 체크하던 정보를 그 다름 사람은 모르고 있을 때 더더욱. 인턴 한두번 다뤄보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벌써 7월, 뜨거운 해에도 나는 너의 환영을 보았다. 네가 죽거나 한 것도 아니고, 어제도 너로부터 전화가 왔었는데.

너를 대신해 새로온 인턴은 남자였고, 너와 비슷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그 인턴을 보고 너를 떠올린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고, 네가 끼어들었던 자리가 너무나 많았기에 그 사람들 대다수가 그 인턴을 너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달, 두달 시간이 지나갈 수록 너는 없어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에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분명 나도 그래야 하는 데, 그리고 수술실엔 너의 그림자가 왜 이렇게도 큰지. 네가 없던 시절의 나는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말실수하던 날이면, 마취과도, 신선생도 나를 잠시 쳐다보다, 평소와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실수한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너의 이름을 불렀다. 느린 손을 혼내고, 거즈를 부르고, 시야가 안 잡힌다 화내고. 봉합까지 마친 후에야 네가 아니란 걸 눈치챘다.

나는 속으로 욕을 하며, 미안하다 말했고, 인턴은 괜찮다 속 좋은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너와 전화를 할 때면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특히 너의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나, 끊기전 잠시의 침묵이 찾아왔을 때. 이 이야기를 들은 네가 좋아할 모습이 눈에 선하기에, 오히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실제로 너의 얼굴을 보면 괜찮아 질 것 같았으나, 마찬가지로 너를 부르지 못했다.

너를 보낸 것이 나였기에, 내가 너를 보냈기에. 너에게 나를 보러오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


"예, 최인혁입니다. 통화 괜찮아요."

인혁은 전화를 받으며 쉴 장소를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딱히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길가에 걸터앉자, 아스팔트에 여름의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가운을 손에 든채 민우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방금도 안에서 실수를 했단걸 무심코 말하려다, 신선생의 새로운 남자친구에 대해 말해주었다.

"좋은 사람이길 비는 거지. 뭐, 내가 더 할 수 있는게 있어요?"
[은아쌤이 교수님한테 애인 생겼다고 직접 말했어요?]
"아니, 내가 새 인턴 한테 들었어요."
[새 인턴이요? 아, 그 봄에 들어온. 아직도 새 인턴이라고 부르세요?]

인혁은 문뜩, 지금이 그 이야기들을 해야한다고 느꼈다. 하지않으면 안된다고.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면, 왠지 민우가 단숨에 부산까지 내려올 것 같은 예감도 동시에 들었다.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멈추자, 민우는 인혁에게 무슨 일 있으시냐고 물어왔고, 대답이 없는 인혁에게 민우는 심각한 것이냐고도 물어왔다.

"아니에요. 아니야. 그런거 아닌데."
[근데 왜 말을 하시다 마세요. 교수님, 힘드신 일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아... 그래요, 요즘 말이에요."

인혁의 짧게 시작된 말은 점점 길어져갔다. 평소엔 듣는 입장이었으면서 말을 해주려하니 답지않게 버벅거리기도 하고,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하면서 그 동안 인턴을 민우라 착각했던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 말이 없던 민우에게 인혁이,

"바쁜 일 있어요?"

라고 하자, 그제야 조금 울음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인혁이 당황하여 달래려고 했지만 민우는 우는 목소리가 확실한데도 아니라고 하다, 좋아서라는 말을 꺼냈다.

[좋아서요. 교수님이 그런 말 해주셔서, 너무 좋아서 그래요.]
"내가 뭐요. 그냥... 그렇다구요."
[알아요. 네. 교수님. 있잖아요.]
"왜요?"
[저도 보고싶어요.]

훌쩍이며 하는 말은 매력적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인혁은 고마웠다. 드디어 말했다는 생각에 시원하기도 했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도 들었다. 그래서 인혁은 일사병 환자가 간간히 실려오는 날씨에도, 전화를 끊기 아까워 들어가질 못했다.

"...그래요."
[원래 같으면 보고싶단 말 듣고 싶다고 했을텐데. 오늘은 벌써 해주셨으니까.]
"뭐가요. 나 그런 말 안했어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내일 오프에요.]
"...그래서요?"

걱정했던 대로 당장에 뛰쳐나오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인혁이 안심하는 사이, 자신의 오프 날짜를 공지하는 민우는 당장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인혁을 보러오기로 마음 먹었다. 인혁은 작게 한숨을 쉬다 자신의 일정을 되새겼다. 내일이면 괜찮긴한데.

[오프라니까요. 교수님, 내일도 병원에 계세요?]
"아마도."
[그럼 그쪽으로 갈께요.]
"네시부터 쉬어요. 그때와요."
[네시요? 애매하네요. 제가 아침부터 갈께요.]
"네시에 와요."

하고 끊으려다 아쉬워져 휴대폰을 보고 있자, 민우가 여보세요? 하고 당황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종료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었다. 아, 그래. 네시. 네시에. 그때까지 내가 버틸 수는 있으련지. 응급실로 들어가자, 다행스럽게도 등을 보이고 서있는 것은 더 이상 민우가 아니었다. 네시. 하지만 인혁은 아침부터 들이닥칠 익숙한 목소리가, 자신의 환영이,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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