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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아재

그래상식 :: 누군가 내게 준





당신을 보자마자, 당신이 누군가 내게 준 선물이란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받아 들 일 수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당신의 팔뚝 하나 붙잡아 내 쪽으로 이끌지 못했다. 그러다 혹여 당신과 눈이 맞거나, 당신이 나 자체를 바라볼 때, 나를 위해줄 때, 내 어깨를 두드릴 때.

나는 죽지 못해 살아있다. 당신은 천사가 준 선물인지, 악마가 준 선물인지, 당신과 한 곳에 있는 그 자체가 내게 천국이었고, 당신에게 가지는 감정의 심화는 지옥과도 같았다. 만약 당신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아이가 없다면 하는 가정은 수십번을 내 머리에 스쳐 지나가며 당신과 내가 손을 잡는 등의 몽상이 이어졌다. 당신이 얼굴을 붉히며 내 손을 잡거나, 어두운 사무실에서 키스를 하거나.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당신과 일희일비를 이어갔다. 그러나 당신의 모든 행동에 저도 모르게 촉이 서있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다른 부서의 한석율씨였다. 평소에도 촉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심지어 다른 부서 사람이면서 어찌 나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인지.

나는 탕비실로 끌려가, 한석율씨가 흘리듯이 '와, 오차장님, 진짜 좋으신 분인 것 같아.'로 시작되는 당신의 찬양을 듣고 있다가, 빠르게 커피 잔을 비우고 밑바닥에 조금 까만 자국이 남은 종이컵을 구겨버렸다. 한석율씨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 양손을 들어 과장된 포즈를 취하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윙크했다.

'차장님이 해외 파견이라도 가시면, 우리 그래 따라도 가겠다~?', 그랬으면 안되는 거 였는데, 나는 탕비실을 박차고 나왔다. 왜냐면, 나는 그 질문 아닌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내 자리로 들어가 앉으니, 또 다시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함께 있는 것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누가 준 선물이든, 나는 당신을 따라서 가게 되어있다. 당신이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비록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입 맞출 수도 없다 하더라도, 마치 환영과 같다 해도. 당신이 나를 보거나, 내게 말을 걸거나, 술에 취해 내게 얼굴을 기대면, 그 때에 나는 마치 죽을 것 같기에, 두근대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기에, 나는 당신 곁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이미 당신이 내 삶의 이유가 되어버린 후 이기에 돌아볼 수 없다. 당신이 없었던 삶 따윈 생각 할 수가 없다. 내가 그 날들을 어떻게 살아왔지? 당신이 없었는데, 내가 어떻게 견뎌왔지. 당신이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런 삶.

밤 늦은 시각, 잔업을 하며 우리 두사람 밖에 없는 부서는 진정 침묵만 남은, 당신에게는 어땠을 지 모르지만 내게는 당신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고, 당신이 넘기는 종이소리나, 타이핑 소리, 심지어 마우스를 클릭대는 소리마저 들려서,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이 감정이 어디로 향하는 지 알지 못했다. 끝이 종말일지, 소멸일지, 혹은

내 몽상과도 같은...

그러나, 나는 현실을 믿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와, 아들들과 행복히 지내게 될 터이다. 당신이 지금 걷는 길이 동화 속 풍경이라고 한다면, 내가 당신을 끌어내릴 곳은 황량한 사막일 것이다. 애초에 당신이 이 곳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당신과 내가 함께 걸으면 우리는 그 뜨거운 곳을 걷다, 걷다, 밤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보낼 것이다. 그러다 말라 죽을 것이고, 나는 적어도 지금은 당신을 끌어내릴 생각이 없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하니까, 내 마음을 보이지 않고 싶다. 당신이 힘들지 않게, 내가 당신의 걸림돌이 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당신을 도와주려고 당신과 지내는 시간들은 점차 내 감정을 키워가고, 누군가 내게 내려준 당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질주하게하는 원동력이다.

잠시 십분만 자다 일어나겠다고 한 당신은 삼십분이 넘어서도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당신에게 닿을 수 없기에, 당신을 깨우지 못한 채 당신의 뺨 위로 손을 가져다 대었지만 닿지는 못한채, 피부 위로 당신의 미약한 온기를 느꼈다.









제 2회 아재 전력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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