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늘 나보다 앞서 있었다. 그래서 축구라는 곳에 눈을 돌리도 하고, 그를 무시하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매인 위성과도 같이, 결국은 이 체육관으로 돌아 올수 밖에 없던 것이다. 내가 밟는 이 길이 모두 그가 걸었던 길임을 알기에, 나는 그 보다 열심히 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커온 내가 그의 돌아보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다. 친형제든, 그런 건 첫 몽정 때부터 없어진지 오래였고, 그와 단 둘이던 체육관 생활이 즐겁지 아니하였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터였다. 그가 결혼할 사람이라며 한 여자를 내게 소개시켜주기 전까지, 우리는 두사람의 낙원에 살았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멀어지는 시야는 흐릿하고, 촛점이 나간채로 그대로 암전되었다. 첫 다운이었다. 나는 그대로 몇십분을 쓰러져 있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에 있었다. 방금까지 쩌렁거리며 울리던 형의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새벽의 병원은 드륵거리는 카트끄는 소리만이 낮게 울려 퍼졌다. 몸을 일으키려다, 당겨지는 침대 시트에 눈을 돌렸다. 형이 웅크린 채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바로 옆, 같은 침대에서. 내가 당긴 시트에 떨어질뻔한 그를 붙잡고, 아래를 보니 보조침대에는 형수가 누워있었다. 형을 내 품에 가득 안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가 필요했기에 이 길을 걸었고, 나는 이것이 그 보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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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뭔 좆같은 양아치들을 털어내고, 형을 되찾았을 때. 그는 그의 목소리를 잃었다. 나는 그의 뒤를 이어 체육관을 운영했고, 형수는... 그 억세던 여자도 점차 지쳐갔다. 당신의 옆에서 온갖 수발을 들던 나는 아직도, 형수가 형의 자식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겠다 말하던 순간을 잊지 않았다. 평생을 이어갈지도 몰랐던 경쟁이 시시하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처음, 그녀의 방이 아니라, 내 방에서 자던 당신이 벌벌 떨며 온갖 신음을 내뱉기 전까지.
그는 누군가의 이름을 외치며, 눈물을 흘렸고 그 이름은 결코 내 이름이 아니었다. 아니, 그건 이름조차 아니었다. 그를 구하며 들은, 그의 납치자. 그의 부드럽지만은 않은 뺨을 쓸어주며, 그를 달랬다. 점차 울음이 멈추고, 그의 규칙적인 숨이 돌아왔다. 정상적이지 못한 그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그의 젖은 눈이 뜨는 것을 보았다.
"형, 더 자."
다시 감기는 그의 눈을 보며, 그가 무엇을 겪었는 가에 대해 생각 했다. 결코, 그것을 막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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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눈을 뜨고 끌려간 곳이 어느 밴이라는 것이 그렇게 이상할 일는 못 되었다. 밴이 뭐, 납치도 많이 하고 그러니까. 그보다 놀란 것은 그 안에 가득 있는 전자제품들과 빼빼 마른 한 남자. 곱슬머리의 남자는 나를 이리저리 보더니 뒤로 돌아 아무도 없음에도 과장된 포즈를 취하고는, 내게 말했다.
"최영호. 맞지?"
나는 입에 감긴 천에 아무말도 못하고 끙끙거리다, 그를 노려봤다. 묶이지만 않았으면, 저런 남자 한 둘은 순식간에 패고 쓰러뜨릴 수 있었다. 같이 묶인 손발은 너무 오랫동안 묶인 것이었는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얇은 끈에 묶인 채 흐늘어졌다.
"체육관 사정이 안 좋다고? 동생이 축구선수래던가? 근데 방탕해? 이야, 최고네!"
극적인 말투는 남자와 잘 어울렸다. 그러나, 영호의 얼굴은 그 남자의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점차 시퍼래져만 갔다. 영호는 수그러드는 고개가 자신의 의지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탓인지 혼란스러웠다. 남자의 말은 점점 이어져 갔고, 영호는 끝내 제대로 앉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아내랑 결혼한지 3년? 에이, 더 쓰지~ 애도 있네? 이야아. 아, 드디어."
처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얼굴을 뺨을 톡톡이는 남자를 향해 겨우 시선을 올리자, 그 남자는 씨익 웃더니.
자신의 복부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무언가 입까지 올라왔다가 사라지고, 사지를 구속하던 끈이 어느새 풀렸지만 나는 일어날 수도 없었다. 부딧친 머리에서 왱-거리는 냉장고 팬이라도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번쩍이는 시야에서 그 남자가 자신을 끌어 당겨 바지를 벗기는 소리나 그 기타 다른 행동들을 하는 동안 나는 꿈쩍 못한 채로 입에 물린 천 사이로 침만 질질 흘렸다.
왼쪽 팔꿈치 안쪽이 쓰리듯이 따가웠다.
#
편지는 또 오고. 내 사진과 내 인감도장, 통장 비밀번호, 등본 등... 나를 말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복제가 그 안에 담겨있었다. 처음은 무시했고, 그 다음 날 온 편지에는 아내의 것들이, 그 다음은 갓난아이인 자식의 것, 마지막으로 익호의 것들이 오자, 나는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편지의 마지막은,
"돈 필요할텐데~ 그렇지?"
그 밴에 자의로 들어서면서 진정으로 누군가를 지킨다는 게, 뭔지.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라도 생각치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아서.
그리고 너와 그 남자가 마주했을 때, 나는 죽어버리고만 것이다. 그동안의 모든 것들이 없어져 버렸기에. 내 자위 행위들이 모두 의미를 잃어 사라져버렸기에.
제 4회 아재 전력 [ 당신의 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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