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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구탁 :: 책 내가 왜 교수노릇을 해야하냐 이거야. 당신 나이는 되야 의심 사지 않을 테니까.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 구탁은 정문의 쇼파에 기대며, 정문의 전공서적을 뒤적였다. 정문은 구탁의 맞은 편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경을 낀 구탁은, 앞부분을 넘기고 중간부터 두꺼운 책을 읽다가, 책을 덮었다. 정문도 구탁에게 설명할 걸 생각하며 자신의 책을 읽다, 구탁을 바라보았다. 구탁은 끼고 있던 안경을 올리고 눈을 비볐다. 왜 그래?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구탁은 자신이 멍청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책에 적힌 활자들은 읽으면 읽을 수록 꼬이고 핑그르르 돌아갔다. 황망히 정문를 바라보니, 정문은 구탁에게 손을 내밀곤 읽던 책을 달라 했다. 구탁이 몸을 기대있던 책을 건내자, 정문은 가방에서 ..
해준백기 :: 짝사랑의 결과 나는 우리가 친해졌다는 걸 알았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게 사적으로 말을 거는 일이 많아지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같이 일을 하나씩 끝낼때마다 그는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어느날은 부서에서 같이 회식을 가기도 하고, 들떴는지 과음한 자신을 그가 부축해 준적도 있었다. 어깨를 감싸 택시 안으로 자신을 부축해주고, 팔의 빼는 그에 저도 모르게 따라 나가려다 닫히는 문에 좌절한 적 또한 있었다. 부서에 있을 땐, 마치 누구보다 그와 가까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옆자리에서, 전화를 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준 일거리를 하고, 그와 합을 맞춰가는. 혹여, 그가 자리를 뜰 때면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외근을 갈때는 인사를 했고, 잠깐 쉬실 때는 더 멀리까지 그를 바라보고 있..
그래상식 :: 발렌타인데이 2015 차장님, 오늘 초콜렛 받으셨어요? 뭔 초콜렛이야. 늙어가는 처지에 그런거 챙길새가 어디있어. 일이나 해. 옙! 그래는 대리님과 차장님의 대화에 끼이지 못하고 물러났다. 어제 고심해서 고른 초콜렛은 아무런 명분을 가지지 못하고, 그저 그의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집에 그걸 다시 가져가 혼자 먹을 생각을 하니 우울해져, 그래는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나마 오후에 차장님과 외근이 있어서 혹시 그때를 노려 건내줄수 없을까 생각하며 그래는 옥상 난간에 기대있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나 땡땡이를 들킬까 돌아본 장그래는 예기치 못한 초콜렛에 몸이 굳었다. 그걸 든 사람의 얼굴도 보이기 전에 눈 앞에 보인 빨간색 하트 모양 초콜렛의 주인은 평소 스쳐가듯 보는 같은 층 여자 동료였다. 장그래가 얼떨결에 ..
정문구탁 :: 민박 "지랄 맞은 날씨네. 지연아, 빨리 들어가자." "진짜 퍼붓네, 퍼부어. 어, 앞에 누구 서 있는 거 아냐?" 양손에 든 짐을 고쳐 들며 지연이가 받쳐 든 우산 안에서 본 건, 낯익은 실루엣의 남자였다. 이렇게나 비가 오는데도, 우산은커녕 뒤에 달린 후드조차 쓰지 않고 이쪽을 바라보는. "이 방이 제일 작은 방인데, 오늘 밤만 묵을 겁니까?" "아마도." 짐도 하나 없이, 맨몸인 남자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발바닥이 젖어 있으면 방이 더러워지니까 닦고 들어라가로 하려 했지만, 신기하게 남자의 발걸음에 물기는 없었다. 나는 무심코 남자를 따라 들어가, "말려 줄 테니까, 옷 다 주십쇼. 갈아입을 옷은 가져다 놓을 테니까." 원래 이렇게, 오지랖 넓은 사람이 아니네 뭐네 하며 남자의 옷을 받았다..
정문구탁 :: 열정 1. HATEFUCK 이 새끼가, 아... 얼마 전에 깎아서 아직 거친 손톱을 이정문의 어깨에 박는 오구탁. 두 사람은 어스름한 하늘을 끼고, 침대도 아닌 쇼파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이정문은 오구탁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움직임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오구탁이 어떤 단발마를 지르던지, 저항하던지, 다 듣고, 맞으면서도 그와 관련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의 사랑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하고 오구탁은 종종 생각하곤 했지만 그런 생각을 이어 나갈수록 비참해지는 것은 자신이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정문은 구탁의 머리채를 잡은 채로 말했다. "당신도 나한테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게 ..
윌니발 :: 용서 전 당신을 용서할 생각입니다. 당신이 내게한 그 모든, 짓거리들도. 그러니, 당신도 날 용서해야할겁니다. 한니발은 순간 암전되는 시야에, 생각만으로 혀를 찼다. 어쩐지 너무 가까이 있는다고 했더니. 윌은 손을 뻗어 쓰러진 한니발의 감긴 눈 위로 손을 덮었다. 그럴꺼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니발의 피부 또한 인간의 피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저보다 따뜻했다. 습기가 차, 기분 좋지만은 않은 기상이었다. 춥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불쾌해지는 곳이었다. 눈을 떠도, 캄캄한 것은 마치 장님이 된 것만 같았다. 신체적 구속이라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가 선사하는 것이라면 좋게 받아들이기로 하고 몸에 힘을 풀었다. 의도를 모르는 입장에서 먼저 움직이는 게 좋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가..
윌니발 :: 동물 시즌2파이널 스포 그저, 평소와 같은 나날이었을 지도 모른다. 윌은 자신의 집에서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원래 같으면 울려야 할 알람은, 건전지가 다 된 시계 탓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윌은 목이 졸리는 꿈을 꾸며 일어났다. 늘 나오는 그 동물이, 자신의 목을 눌러왔다. 압착 프레스로 눌리듯이, 그 사이에 윌은 이상한 소음도 들었다. 마치 기계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 숨이 가빠져 가면서도, 윌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뜰 수도 없었고, 앞에 있는 이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단지, 배가 따가웠다. 겨우 눈이 떠졌을 때, 그 동물은 한 발자국, 그리고 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윌은 그것이 숨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 동물은 두 발자국 물러나 윌을 바라보았다...
그래상식 :: 베일 베일을 걷어 올린다는 건 지켜준다는 걸 의미한다고 합니다. 물소리가 들렸다. 비몽사몽인 가운데, 옆자리의 서늘함은 익숙하지 못한 감각이었다. 늘 옆에 누워 있는 사람보다 늦게 일어나기는 하지만, 물소리로 일어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굳이 떠올려보자면 왼손 약지가 묵직해지기 전, 지금과 같은 상태일 때. 좁은 단칸방은 빈 종이상자가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어제 장그래와 밤새 술을 마시며 정리했던 탓에, 옷이나 책 등은 엉망으로 꽂혀 있었지만 별로 생각은 없었다. 들쑥날쑥인 책장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침대에 앉아 햇빛을 받고 있자니, 화장실 문이 열리며 장그래가 나왔다. "내가 너랑 어제 얼마나 마신거냐?" "차장님 혼자만 해도 2병 반 정도 드신것 같은데요." 장그래는 어디서 찾은 건지 하얀 수건으로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