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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상식 :: 문자메시지 겨우 맞는 주말에, 나는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이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시끌시끌했을 집이 이시간까지 조용할리가 없었기에 팬티차림으로 거실로 나오자, 주방도, 티비 앞도, 아이들 방에도 사람이라곤 보이지도 않았다. 배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쨍한게, 오히려 사람들의 빈자리를 부각 시켰다. 일단 쇼파에 올라가 티비를 틀어 놓고 생각해 보니, 어제 장그래랑 둘이 야근까지 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아내가 애들이랑 친정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었지만. 설마 날 두고 갔을 꺼라곤. 너무 피곤해 하니 두고 간건가, 하고 아내의 배려에 고맙기도 하면서, 동시에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찝찝한 마음으로 좋은 날씨에 티비나 보고 있으려니, 또 다시 잠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른하고, 잠이 드는...
그래상식 :: 담배연기 담배연기를 상대방의 얼굴에 내뿜는 행위는 오늘밤 당신을 가지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아침은 빛나고, 아름다워 보였다. 밤 뒤에 온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새로 떠오르는 햇빛과 그제야 모습을 보이는 구름이 떠올라 직각으로 세상을 비추는 그 광경이 아름다워서 나는 잠도 잊은 채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낮의 강한 햇빛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두터운 모직커튼을 틈새 마다 꼼꼼하게 끼워 넣고, 침대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이불을 둘둘 맨 상태로 웅크려 자고 있는 그가 있었다. 시계를 힐끗보곤, 다시 얼굴이나 볼까 하고 옆자리에 조심스레 누우니, 깨어 있는 것인지, 아닌지, 그는 몸을 뒤로 빼었다. 어차피 침대에서 멀리 가지도 못하는 이불뭉치를 가만히 보고 있자, 이윽고 머리 부분이 움찔..
그래상식 :: 도청 도청하는 목소리 페티쉬 장그래와 그걸 막으려는 오상식 를 들어주세요. 1. 너의 목소리가 들려 골목 골목을 돌아,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언제나 외롭고 쓸쓸하다. 가로등이 켜져 있고 혹은 꺼져있고,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조금만 옆으로 가면 네온사인에, 귀가 떨어질 것 같은 말소리와 음악 소리로 가득한 동네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진정한 적막. 자신의 발소리만 거리를 울리고,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이 적막 속에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휴대폰에서 도청 앱을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가쁜 숨이 내 폐에서 빠져나갔다. 지금 내 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는, 내게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다. 골목을 차지한 계단 하나하나를 올라감에도 흥분이 담겨 있었다. 약간은 안 좋은 음질에, ..
그래상식 :: 바둑 6살 장그래와 23살 오상식 여름에 매일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오는 길에는, 철제 미닫이 문이 활짝 열려 안이 보이는 바둑원이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다 보면, 상당히 늦은 시간인데도 늘 한 아이가 혼자 바둑을 두고 있었다. 호기심에 몇번을 그 곳을 훔쳐보느라 시간을 허비했는지 모를 정도 였다. 그 애의 시선은 언제나 바둑판을 떠날 줄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날. 그래 그 날. 나는 그 날도 어김없이 그 애를 보고 있었고, 그 애는 바둑판을 보고 있어야할 시선을 내게 옮겼다. 우리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다, 민망해진 내가 그 바둑원을 지나치는 걸로 끝이났다. 다음날, 그 거리에 들어서서 바둑원이 눈에 보이자, 나는 그냥 지나쳐야 겠다고 결심했지만, 빠른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치면서도 그 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