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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인혁 :: Blossom 요 이틀 간 교수님을 본 적이 없었다. 줄줄이 이어지는 수술 때문이었는데, 점점 피곤해하시겠다고 막연하게만 생각될 뿐, 그의 옆에 은아쌤이 있을 테니 괜찮겠지. 라며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안되었는데, 지금 맡은 여러 중환자의 케어에 내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먼저 찾아오시게 하다니.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은, 별것도 아닌 것을 내가 따지는 바람에 생긴 사소한 다툼 때였다. 그와 은아쌤이 나란히 앉아서, 즐거운 듯이 웃으며, 외식을 하는. 내가 그런 광경을 본 탓에 생긴 작은 분란.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걸로 다퉜을까 싶기도 하고, 아직 조금 화가 나기도 하고. 뻑뻑이는 눈을 다시 감았다가 뜨며, 관통상을 입은 환자의 동맥혈검사 결과를 수첩에 옮겨 적었다. 교대로 온 인턴에게..
그래상식 :: 중독자, 반복. [내일 봅시다] 당신과 내가 헤어진지, 벌써 몇개월이 지났는지.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먹히기라도 한 듯, 나는 그 기간을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당신을 피해다니고, 끝내, 겨우 이직까지 하게되고. 하지만, 이 직장에 들어서서 당신의 입김이 내 이직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 지 또 알게되고. 나는 그걸 무마하려 또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당신을 생각할 그런 여지조차 두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또 다시 당신에게 달려가서 당신의 바지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릴테고, 당신은 또 나를 보며 한숨 짓겠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당신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내가 컴퓨터를 만질 때, 거래처를 만날 때, 발표준비를 할 때, 보고서를 작성할 때, 회식을 가서도. 당신의 목소리와 몸짓과 모든 당신의 생각이..
그래상식 :: 질투, 맹목 재능를 사랑한다. 신은 그의 뛰어난 제자를 대견스러워 할 뿐, 절대 시기하지 않는다. 그 제자가, 신이 될 수 없음이 너무나 명백하니까. 그러나 인간은 그의 뛰어난 제자를 시기한다. 동시에 대견스러워도 한다. 젊음이 부럽다고, 처음으로 느낀다. 그의 제자에게. 상식은 책상을 두드린다. 핑그르르하고 돌아가는 펜은, 이내 예고했듯 떨어져, 누군가의 발치를 건드린다. 그 누군가는 또 그 펜을 주워 상식에게 건낸다. 그러면 상식은 또 펜을 돌리고, 떨어진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야, 펜은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필통에 들어가서 눕는다. 상식은 그래의 눈을 보고 가로 젓는다. 그래의 고개가 떨어지고, 다시 상식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이건, 내 수준의 논문이 아니야. 우리 과 교수들 다 모아서 이야기 해봐야겠..
민우인혁 :: 흔한 애인 사이 당신을 위해서, 서울로 향하는 길이었다. 레지던트 4년. 그 기간동안, 나는 당신을 두고 떠나게 될 터였다. 당신은 왜 나를 당신의 품에 품어주지 않았을까. 재인쌤이 당신의 밑에 레지 TO를 넣어주겠다고, 그렇게 말했다던데. 왜, 당신은 그 TO를 받지 않았을까. 내가 곁에 있는 것이, 그렇게나 무서웠을까. 당신의 실패를 바라보고, 그것에 내가 실망하는 것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내가 더 이상 당신을 우러러보지 않음을 상상했을까. 나는 당신이 나를 붙잡기를 바랬다. 당신은 너무나 배려심이 깊었다. 그 배려가 당신을 감싸고 있었다. 은아쌤도, 나도, 당신이 붙잡으면 언제나 당신에게 돌아갈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는 배려일 것이다. 당신은 너무나 빛났다. 당신을 보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당신을 해치는 ..
정문구탁 :: Rollback ※AU주의 몇년을 걸쳐, 만나온 사람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원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참았다. 오구탁이라는, 이 사람과의 현재 관계를 부수고 싶지 않았기에. 자신이 무언가를 했다면, 그랬다면, 지금까지 오구탁과 자신의 관계가 산산히 무너져 내릴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랬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와의 만남은, 몇 안되는 소중히 여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묶여있는 남자는 누구인가. 오구탁. 나지막히 부르자, 고개를 드는 것은 분명 그가 맞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었다. 눈빛부터 시작하여, 입꼬리, 자세 등. 혀를 차며, 피가 섞인 침을 뱉은 오구탁은 다가오는 이정문을 바라보았다. 저 눈에 자신을 향한 선망의 빛이 서려 있던 것을 보는 게 좋았다. 손..
모브인혁 :: 출혈 ※골든타임 정도의 고어. 일부러 줄여서 그냥 골든타임 무리 없이 보셨음, 그냥 보셔도 됩니다. ※뻔함 "최인혁 교수님. 교수님. 일어나세요." 빈 콘크리트 바닥에, 찬기가 올라 오지 않도록 이불을 깔아둔 위에, 한 남자가 빈 파이프에 손이 묶인채 벽에 기대 있었다. 그가 입은 하얀 가운, 그리고 그 안의 수술복이 그의 신분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가운에 달린 명찰. "오늘은 기대하셔도 될 것 같아요. 저번엔 너무 빨라서 재미 없으셨죠?" 살며시 떠진 눈을 보며 말했다. 수염이 너무 났네. 저녁에 면도 해드려야 겠다. 최인혁은 더이상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꿈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쥐고 펴는 손은 아렸다. 파이프를 부수겠다는 목표도 희미해져갔다. 손가락을 포기하고 벗어날 생각도 했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그래상식 :: 지각 ※성적인 묘사 조금 있음. ※초반, 후반 글체(?) 다름. 비가 오는 날이었다. 지치도록 우중충한 날은, 아침부터 예보룰 보지 않아도 우산을 챙기게끔 했다. 물론, 늘 아슬아슬하게 오는 오상식에게 우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가방에, 젖으면 안되는 스크랩 자료가 든 탓에 상식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양복 상의를 벗어 가방을 감쌌다. 하필이면 겉옷도 놓고 온 탓에 상식은 건물을 따라 흐르는 빗방울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상식의 차는 아내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간 아내 탓에, 우산을 놓고 온 것이지 않을까. 하고. 상식은 더 어둑해지기 전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위로 흐르는 빗방울 하나하나에 질투가 났다. 동시에 아까웠고, 안..
그래상식 :: 뱀파이어 1. 상식은 입 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그는 손에 쥐고 있는 축 늘어진 동물의 사체를 땅에 묻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던, 얼마나 오래 살아왔던, 이 빌어먹을 것은 저를 놓지 않을 것이다. 상식은 이미 오래 전, 피를 먹지 않기 위해 하던 노력을 그만 두었다. 생존이란, 그의 유전자에 박힌, 기본 체제였던 탓이다. 상식은 모래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곤, 걸음을 재촉했다. 내일 회사에 출근하려면 빨리 돌아가 준비하는 것이 맞았다. 자신이 햇볕에 타 죽는 약한 흡혈귀가 아닌 데에 감사하는 유일한, 아니 숙취가 없다는 점을 포함하면 유이한 장점인 것이다. 상식은 사람이 없는 새벽 도로를 달리며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지 않다가, 문뜩 그것을 깨닫곤 헤드라이트를 켰다.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