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52)
[뮨른전] 패류 1. 하늘 덮개에 다가가면 변을 당한단 말이 공공연하게 돌 때였다. 발가락이 돋아난 채 유폐되어 있던 어머니가 죽은 날, 그 실 같던 머리카락은 하늘에 대고 해초처럼 흐늘거렸다. 당신은 햇빛을 보고 온 날부터 머리가 타들어 갔다고 들었다. 붉던 당신의 머리가 태양을 닮아 노랗게 되고 포말처럼 하얗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고도. 처음 본 당신은 이미 새어버린 머리와 낡은 미소를 지은 채 하늘만을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당신만을 보고 당신을 가둔 철문을 열었을 때, 당신은 나를 보지도 안아주지도 않은 채 당신 머리색처럼 빛나는 수면 따라, 내가 따라가지 못할 헤엄으로 날아갔다. 나를 낳고 난 후에, 당신은 더는 수면 위에서 숨 쉬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버려졌다. 그 높은 배에서 떨어져..
치원마박/치원도현 :: Parachute 참고한 노래 뿜어내리는 피를 막아보려 식어가는 목줄기 붙드는 네 손길이 따뜻했다. 시야가 검해지고, 네 손으로 따인 목은 덜렁이며 너를 향해 꺾였다. 머리가 욕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네 비명이 들렸기에 아, 내가 죽었구나. 그제야 알았다. 내가 가장 높이 있을 때, 그리고 그 높이가 나의 것이 아닐 때, 그 모든 게 너로 인해 올라갈 수 있을 때. 그 곳에서 내려올 수단을 선별하는 건 너였다. 너 만이 나를 끌어내릴 수 있었다. 마치 내가 내 복수를 이룩했던 것처럼, 너 또한 너의 부모나 그와 비슷한 이들을 위해 나를 끌어내려야 했다. 내가 너를 쥐고 하늘로, 내 생애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높이 올라 있을 때, 네가 직접 내가 멘 낙하산을 끊..
치원마박/치원도현 :: 가난한 눈짓 네 가난한 눈짓에 그저 무너져 내리는 내가 있었다. 그 무겁던 감정들을 놓아버린 빈 껍데기에 붙어오는 네가 있었고, 다시 그에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드는 네가 있었다. 애초에 네가 바란 게 뭐길래? 젖은 얼굴을 쓰다듬으면 그가 마치 목숨줄이라도 되는 듯 붙어오는 너는 내게서 무언갈 끌어 내려는 듯, 혹은 내가 빈털터리란 걸 더 상기하게 하는 듯 했다. 누가 널 데려왔더라. 젖은 강아지나 고양이 같던 널... 배우는 배우를 알아보고, 우리는 서로를 알아봤다. 화려한 껍데기와 속 알맹이들. 나뒹구는 동안 새로 자리 잡은 줄 자국에 약을 발라주었더니 금세 졸졸 쫓아 오는 눈빛이 싫었던 기억은 있었다. 정신연령이 어리기만 한 이 바닥에서 그건 그리 희귀한 경험은 아니었고, 네 마스크가 유달리 특출났기에 ..
조윤중호 :: 화분(花粉) 지독한 분내가 났다. 윤은 가만히, 낯설지 않은 냄새를 쫓아 걸었다. 시각화된 냄새, 혹은 후각화된 모습이 긴 벤치에 들어 누워 있는 걸 보고, 윤은 햇빛을 가리듯 그의 위를 덮었다. 짧게 속삭이는 말에, 미동도 없이 잠든 듯 했던 이가 발악하듯 일어나 윤을 죽일 듯 보았다. 윤은 그저 그런 그의 헝크러진 머리를 쓰다듬고, 옷깃을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떠나는 발걸음은 언제나보다 조금 더 즐거웠고,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중호는 조윤의 입술이 닿았던 귓바퀴를 떼어낼 듯 긁으며 떨어진 신문을 집어 올렸다. 어울리지 못한 신문은 맨 앞장만 겨우 중호의 시선을 끌었을 뿐, 발행되던 때에 눌려진 그대로 모습을 유지하고있었다. 그저 중호의 햇빛가리개 용으로 나마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고, 중호는 그런 신문의 ..
최김/준호범신:: 융기 놓고 가라....예. 짧게도 스치지 못한 시선이 다시 엇갈려 흘러가듯 서로를 엿보았다. 떨어져 나간 손에 몸은 더 가벼워야만 하는데, 오히려 발걸음은 더 느려지기만 하였고 심지어 전송하려 들어 올린 팔과 손도 마치 쇳덩이와 같이 삐걱거리게 움직였다. 익숙하게 표정을 가렸다 생각하지만, 평소와 달리 자신이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몰라, 붉은 눈가를 누르며, 언뜻 본 얼굴을 곱씹어 누구도 보지 못할 탄식을 뱉었다. / 신부님, 김 신부님.두 번 안 불러도, 아직 귀 인멀었다....바로 김 신부님이라 부르긴 어색하잖습니까. 유연치 못하게 받아친 말이 오히려 도리어 내 등을 찔렀다. 그야 그렇지. 하며 돌아서는 당신에는 내 말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입었으나, 그런데도 나는 당신의 뒤를 쫓았다. 이 옆에 있..
최김/준호범신 :: 상처난 유리잔 ※최신부 김부제AU 나는 수일간 전화 목소리만을 아는 사내를 찾아다녔다. 겨우 수도원장님의 전화에 그 철문을 열어 다가가면, 그는 빈 찻잔만을 내밀고는 다시 어디론가 가버린 후였다. 찍찍대며 늘어지는 빗소리가, 다가오는 기한처럼 내 목을 조르고만 있는 듯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달 모양, 그림자, 그리고 떨어지는 낙엽들처럼. 놀리듯 이어가는 전화에 같잖은 신부는 여자를 함께 있을 때도, 혹은 비명을 뒤로할 때도 있었고, 그는 언제나 평온하다 못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대했다. 토해라. 그 목소리는 처음으로 낮았고,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말투였다. 나는 토닥이는 온기에, 다시 위벽을 밀어 올렸다. 고작해야... 고작해야 핏덩이였다. 조금만 잔인한 영화를 봐도 저것보다 훨씬 처참한 광경에 직면할 수 있..
최김/준호범신 :: 타살 가늘지만은 않은 목을 부여잡고, 최준호는 그리도 서럽게 울었다. 세상에 더는 없을 그런 사람을 보내는 듯이, 이제는 다시 없을 이. 범신이 스스로 저 아래로 가려 하는 걸 막아선 건 자신이었으나, 준호는 끝내 손가락 끝을 떨어댔다. 목덜미 위의 솜털이 바짝 서서는 준호를 막아 세웠고, 범신은 왜 그렇게 따뜻한 몸을 하고 있었던 건지. 결국 그의 위에 탄 채로 준호는 밤새, 그 마른 나무 장작 같은 몸 어디에서 그런 양의 수분이 나오는지. 준호는 범신을 흠뻑 적신 채로 잠들었다. 범신은 또다시 죽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범신은 그의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내려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철도는 덜커덕거리고, 내리 꽂는 빗방울이 누굴 적시려 드는 건지. 범신은 머리를 저었다. 이곳..
최김 :: 달무리 ※ 19금 요소 있음 ※ 신성 모독적인 요소 있음 꽁꽁 얼은 손을 라디에이터에 비비며 녹이고 있는 참이었다. 이 날씨에 기껏 심부름 갔다 와보니, 김신부님은 요즘 들어 자주 그를 찾아오는 어느 남신도와 이야길 하고 있었다. 저번엔 집들이도 갔다던가... 되도 않는 질투인 걸 알면서도, 녹지 않고, 팅팅 얼어버린 손가락 마디처럼, 생각 아닌 공상이 이리저리 머릴 튕겼다. "뭐해?" 침울해져 굳이 그를 보지 않으려 애쓰는 내가 이상했던지, 그가 내게 다가왔다. 손만 슥슥 비비며 침묵하자, 그가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었다. 나란히 붙어 있는 내 손의 양 옆을 떡하니 차지한 그의 손은, 내 손보다 확연히 작고, 하앴고, 온갖 굳은 살과 생채기로 투박했다. 그에 비해 내 손이야, 온실 속 화초마냥 어느 영애라도 되..